항목 ID | GC05200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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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陽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석정동·주양동·장성동·고도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봉양동이라 하였다. 또한 봉화재가 위치해 있다고 해서 봉양동이라고도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석정·묵동·장선·술못안 등이 있다. 석정(石井)은 1480년(성종 11) 정경우(鄭景佑)가 다인에서 이 마을로 옮겨와 정착하여 살다가 식수가 없어 헤매던 중 어느 산 밑 돌바위에서 물이 솟아왔으므로 돌우물이라 하였던 데에서 유래한다. 묵동은 1683년(숙종 9) 정세전(鄭世錢)이 봉성 서당(鳳城書堂)을 건립하였는데, 유림들이 모여 학당이 성행하여 필묵이 못을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장선(張仙)은 330여 년 전 조선 효종 때 안정동에서 장두수(張斗壽)가 옮겨왔는데 처음에는 장선이라 하다가 요즘에는 장선(長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중앙에 있는 마을 계곡에 길고 맑은 물이 흘러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일부는 장시라고도 한다. 술못안[酒池]은 약 300년 전 김순도(金順途)라는 승려가 지나가는데 술 냄새가 나므로 이상히 여겨 조사해 보니 조그마한 못에서 술이 솟고 있어 주지란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개천지에 흡수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형성 및 변천]
1480년 정경우가 개척하여 석정이라 칭하였고, 1683년 정세전이 묵동(墨洞)이라 칭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석정동·주양동·장성동·고도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안계면 봉양동이라 하였다. 1988년 5월 1일 군 조례 제1225호에 의거하여 봉양 1리와 봉양 2리로 개칭하였다.
[자연환경]
경상북도 내에서도 규모가 큰 안계 평야가 인접하고 있는 낮은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인 산간 지역이다. 마을의 동쪽에 거대한 저수지인 개천지가 있고 작은 하천들과 수많은 저수지가 있어 농사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봉화재[높이 220m]가 동쪽으로 솟아올라 있으며 그 골짜기를 따라 논과 밭이 분포하고 있다. 봉양 2리는 원래 개천지 자리에 있었는데 못이 확장 증축되면서 못 밖으로 밀려나왔다.
[현황]
봉양리는 안계면 소재지에서 국도 28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선돌에 못 미쳐서 왼쪽으로 건너다보이는 못[개천지]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4.99㎢이며, 총 67가구에 117명[남자 59명, 여자 58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안정리와 안사면 중하리, 서쪽으로 토매리와 개천지, 남쪽으로 위양리, 북쪽으로 도덕리와 인접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군도 15호선, 서쪽으로 군도 17호선, 남쪽으로 군도 14호선이 통과하고 있다. 개천지는 1959년 12월 저수지로 준공되었다. 저수량 약 3,600t, 만수 면적 59.2㏊으로 1983년부터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의 물이 양서 양수장으로 유입되면서부터 수원이 풍부해졌다. 붕어·떡붕어·잉어 등 담수어가 풍부하며, 각종 편의 시설과 벚꽃 길 등 주변 환경이 좋아 낚시터로도 알려져 있다. 농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별다른 부업은 없다. 봉화재를 중심으로 고려 시대 산성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