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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456
한자 竹津山烽燧址
영어의미역 Beacon Fire Station Site in Jukjinsan Mountai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 2리 388 내봉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희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봉수지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 2리 388 내봉동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 내봉동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지.

[개설]

죽진산 봉수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4개소의 봉수대 가운데 1개소이다. 죽진산 봉수지의 봉수망은 남쪽으로는 전반인산 봉수대, 북쪽으로는 죽변곶 봉수대와 응하였다.

[위치]

죽진산 봉수지는 내봉동 동쪽 해안가에 돌출된 해발 55m인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봉수지로 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죽진동에서 북쪽 능선부를 타고 오르는 길과 내봉동 앞 내봉골에 있는 밭을 지나 계곡부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내봉골로 가는 길이 봉수대와의 연결이 더 쉬운 편이다. 내봉동 앞에 있는 내봉골 입구부에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북쪽으로 급격히 꺾이는 코너를 돌면 동남쪽으로 완만한 밭이 나온다. 밭은 해발 50m 내외의 낮은 구릉에서 정상까지 경작되고 있으며, 경작지 북쪽에 봉수대가 있다.

[형태]

죽진산 봉수대는 원래 완만한 경사지인 자연 지형의 일부를 편평하게 정지하여 원형의 토축 기단부를 만들고, 그 위에 원형의 토석 혼축 연대를 설치하였다. 토축 기단부의 평면은 남쪽 경계 일부가 훼손되어 북서-남동 방향으로 약간 찌그러졌으나 원형에 가깝다. 규모는 하부 지름 25m, 추정 상부 지름 13.1m, 전체 높이 2m이다.

특히, 기단 상부의 공간을 좁게 하고, 기단 하부의 지름을 넓게 하였다. 기단부의 높이는 높지만 경사를 완만하게 하여 기단부는 상부 공간 활용보다는 연대의 높이를 전체적으로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단부의 북쪽은 비교적 완만하여 출입로로 추정된다. 연대의 남쪽 경계는 밭을 만들면서 절개되어 훼손되었다. 동쪽에는 동서 방향으로 긴 물방울 모양의 토축이 마치 쌍분처럼 나란히 있으며, 그 위로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토석 혼축 연대는 평면형이 원형으로 원형 기단부의 중앙에 설치하였다. 길이 35㎝, 너비 20㎝, 두께 15㎝ 내외의 산돌을 이용하여 하단부를 원형으로 쌓고, 그 위에 각을 좁혀가며 3~4단 정도 산돌을 쌓은 후 토축하였다. 상부쪽으로 갈수록 토축의 사용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연대의 하단부에 노출된 석축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었으나, 서쪽 경계 일부에서는 석축의 원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서쪽 입구부에는 기단부 바깥쪽에 길이 1m 이상인 석재 1매가 따로 떨어져 있다. 석축 연대의 서쪽 측면에는 길이 90㎝, 너비 25㎝ 가량의 장대석형 석재 2매가 길이 방향으로 연대 하단부를 따라 호형으로 놓여 있다. 그 주변으로 길이 10㎝ 내외의 작은 산돌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이 밖에 북쪽 경계와 남쪽 경계 일부 반경 150㎝ 내외의 공간에 길이 10㎝ 정도의 산돌이 흩어져 있다. 이 산돌은 봉수대에 비치된 물품 가운데 하나인 수아석[몽돌]으로 추정되나 분명하지 않다.

봉수대의 북서쪽으로는 토축 방호벽이 서쪽으로 난 봉수대의 입구부에서부터 북쪽의 계단식 지형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설치되어 있다. 토축 방호벽의 규모는 총 길이 32m, 너비 2.3m, 전체 높이 0.7m이다.

연대의 정상부쪽으로 갈수록 석재의 양은 줄고 토축의 비율이 높아진다. 정상부는 약간 편평하게 되어 있으며, 길이 10㎝ 내외의 작은 산돌이 흩어져 있으나 정형성을 찾기 어렵다. 서쪽 측면의 석축 일부가 잘 남아 있으나, 이 밖에는 토축에 가려져 있어 지표상 확인이 어렵다. 원형 석축 연대의 크기는 하부 지름 9.2m, 상부 지름 2.4m, 전체 높이는 2.8m이다.

주변에서 건물지와 창고지로 보이는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토벽 내부 및 외부쪽에 상당히 넓은 평탄지가 있고, 연대의 서쪽 경계부의 장대석 주변과 봉수대의 남쪽에 있는 밭 주변에서도 토기편과 백자편이 수십 점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봉수대와 관련된 건물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봉수대가 원래부터 토석 혼축으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밭둑을 만들면서 연대에 있던 석재를 가져다 사용했다는 주민의 증언과 서쪽 경계 일부에 남아 있는 석축의 형태와 대형 석재로 보아 본래는 석축 연대였을 가능성이 높다. 봉수대의 내부와 주변에는 20~30년 이상된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후망은 어렵다. 그러나 지형상 남쪽과 북쪽에 있는 봉수에 응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으며, 낮은 구릉부에 위치하여 마을과의 소통이 쉬운 장점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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