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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601
한자 南師古
영어음역 Nam Sago
이칭/별칭 격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전인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학자
출신지 경상북도 울진군
성별
몰년 선조
본관 영양(英陽)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격암(格菴). 만호(萬戶) 남호(南顥)의 증손이다.

[활동사항]

남사고는 천품이 재주 있고 사리에 밝아 경사(經史)에 능통하였다. 항상 『소학』을 책상에 두었고 특히 역학, 천문, 지리에 정통하여 기(氣)의 묘를 능수능란하게 관찰하였다. 봉래 양사언(楊士彦)이 『주역(周易)』을 논하다가 남사고를 스승으로 모셨는데 남사고의 깊은 말을 조정에 올리기를 “조정에 멀지 않아 동서분당론(東西分黨論)이 일어나 국가의 근심이 막심하리라” 하였고, 서쪽 하늘을 향하여 네 번 절하고 말하기를 “명나라의 천자가 죽는다”고 하였다.

또한 한참 동안 경건한 마음으로 묵례하니 화창한 날에 사직동(社稷洞)에 기가 서려 있음을 보고 성인이 태어난다고 하여 국가의 경사가 있음을 예측하더니 후에 덕흥군(德興君)이 탄생하였다. 또 소백산에 올라가 동남쪽에 왕성한 기를 바라보고 진·사(辰·巳) 양년에 임금이 피난 가는 큰 난리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또한 『천자문』에 주를 달아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었고, 선조 초에 천문교수로 재직할 때 오래되지 않아 태사성(太史星)이 어두워짐에 관상감정(觀象監正) 이번신(李藩臣)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자 남사고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당할 자가 자기라고 하더니 그 후 남사고가 죽었다.

[저술 및 작품]

「완역도(玩易圖)」를 제작하여 이치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황왕포(皇王鋪) 서문」과 「설월품제(雪月品題)」 등을 지었다. 1994년 「해옥첨주부(海屋添籌附)」와 『격암유집(格菴遺集)』이 현대문으로 번역되었다.

[묘소]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구미동에 별묘가 위치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현령 정구수(丁龜壽)가 고을 사람들과 같이 1574년(선조 7) 옥계서원(玉溪書院)에 봉향하다가 임진왜란 때에 서원이 불탔고 1621년(광해군 13) 몽천사(蒙泉祠)로 이향하였다. 또 1693년(숙종 19) 향현사(鄕賢祠)에 모시다가 1868년(고종 5) 서원이 철폐되어 1927년 화산사(花山祠)에 봉향하고 화산사를 상현사(尙賢祠)로 개칭하여 배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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