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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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心寺事蹟碑 |
영어공식명칭 | Stele for the Construction of Ansimsa Temple in Wanchang-ri |
이칭/별칭 | 완창리 안심사 사적비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26[안심길 37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철 |
건립 시기/일시 | 1759년 - 안심사사적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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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9월 20일 - 안심사사적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심사사적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안심사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26번지[안심길 372] |
성격 | 비 |
재질 | 대리석[비신]|화강암[이수]|자연석[좌대] |
크기(높이,너비,두께) | 220㎝[높이]|104㎝[폭]|38㎝[두께] |
관리자 | 안심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에 있는 안심사의 연혁을 기록하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안심사는 638년(백제 무왕 39)에 자장법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그 뒤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고, 신라 말 고려 초에 조구(祖求)화상에 의해 재중창되었다. 그 뒤 고려를 거쳐 1601년(선조 34) 수천화상(守天和尙)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1710년(숙종 39)에 다섯 번째로 중창되었다고 한다. 안심사는 6.25전쟁으로 당시 경내에 30여 채의 건물과 주변에 13개의 암자가 있었으나 전소되었다. 안심사사적비의 비문은 당시 안심사 주지 처능(處能)의 부탁을 받아 우의정 김석주가 지었으며, 글씨는 이조판서를 지낸 홍계희(洪啓禧)가 썼고, ‘大屯山安心寺碑(대둔산안심사비)’라는 전서(篆書)는 영의정 유척기(兪拓基)가 썼으며, 도총부 도총관 유최기가 후반부에 기문을 추가했다. 이러한 당대 최고의 문장가와 서예가가 합작한 안심사사적비는 금석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건립 경위]
1658년(효종 9)에 안심사의 주지인 처능이 안심사가 창건된 지가 오래되고 또한 기록해 둘 만한 옛 사적도 많이 있어 이를 글로써 남겨놓기를 소망해서 비석에 새길 비문을 우의정 김석주에게 부탁하고 지은 비문을 많은 이들에게 안심사가 오래된 절임을 기릴 수 있게 하기 위해 100여 년이 지난 1759년(영조 35)에 안심사사적비를 세웠다.
[위치]
완주군 운주면 소재지에서 완창리로 접어들면 대둔산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가다 보면 안심사로 가는 안내표지판이 나오는데, 안심사사적비는 안심사 주차장으로 올라가기 전 지장암으로 향하는 작은 도로의 왼쪽에 있다.
[형태]
안심사사적비는 거대한 자연석 암반을 다듬어 좌대로 삼고 흰 대리석으로 비신을 세운 뒤 옥개형 개석을 올렸다. 비신의 높이 220㎝, 폭 104㎝, 두께 38㎝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로서 네 면에 고루 글을 새겼으며, 개석은 조선시대 후기에 흔히 나타나는 형식이다. 비신에 새겨진 홍계희의 해서 글씨는 당나라 서예가인 안진경의 필의를 고수해 쓴 글씨이며, 두전(頭篆)[비석 몸체의 머리 부분에 돌려 가며 쓴 글자]의 소전(小篆)은 가늘면서도 강골한 필획으로 여유 있는 자형 포치가 기품이 묻어나는 글씨체이다.
[금석문]
안심사사적비의 비문은 네 면에 고루 새겼으며, 기록된 내용을 통해 이 절에는 대웅전과 약사전을 비롯한 30여 채의 건물과, 석대암·문수전 등의 12개의 암자가 딸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문에는 “사찰을 창건한 분은 조구 스님이고 비문의 글을 부탁했던 분은 처능 스님이다. 이것은 명능(明能) 스님의 뜻을 받아 한 일이었다”라고 되어 있다. ‘능’자 이름을 가진 두 분 스님이 하고자 했던 일이었다. 조구 스님은 고려 태조 때의 고승이다. 옛 기록에는 “당나라 정관(貞觀)연간에 자장율사가 사찰을 창건했으며, 역시 당나라 건부(乾符)연간에 도선대사가 창건했고, 세 번째 중창이 곧 조구 스님의 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내용을 검토해보면 안심사는 백제 무왕 39년인 638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내용과, 승려 조구가 창건했다는 내용 등 두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안심사사적비 전반부의 김석주(金錫胄)가 편찬한 비문[1658년]에는 승려 조구가 창건주로 되어 있고, 사적비 후반부, 즉 100년 후 비가 건립될 당시[1759년]에는 자장율사가 창건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비문에는 “유명 조선국 전라도 고산현 대둔산 안심사사적비병, 병서 분충효의병기협모보사 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우의정 겸 영경연사감 춘추관사 병조판서 청성부원군 김석주가 글을 짓다. 숭록대부 원임 행 이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 춘추관사 예문관제학 세자좌빈객 홍계희가 글씨를 쓰다.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연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제자사 유척기가 전서를 쓰다. ... 자헌대부 원임 한성부 판윤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유최기가 기록하다. 숭정 세 번째 기묘년[영조 35, 1759] 4월 일 새기다”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안심사사적비는 안심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작은 도로에 있다. 자연석 암반을 좌대로 삼고 그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비석의 주변은 잡초가 자라고 있으며 좌대와 개석에는 이끼와 지의류(地衣類)가 부착되어 있는 상태이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점차 마모가 진행되고 있어 이에 대한 보존 방안도 필요하다. 1984년 9월 20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