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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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心里吳在孝, 吳仁漢旌閭 |
영어공식명칭 | Monument Gate for O In-hwan, O Jae-hyo in hwasim-ri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유상마을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범호 |
건립 시기/일시 | 1885년(고종 22) - 화심리 오재효, 오인한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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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893년(고종 30) - 화심리 오재효, 오인한 정려 건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5년 - 화심리 오재효, 오인한 정려 개축 |
현 소재지 | 화심리 오재효, 오인한 정려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유상마을 |
성격 | 정려 |
양식 | 돌 정려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유상마을에 있는 오재효와 오인한의 정려비.
[개설]
오재효[1858~?]의 본관은 동복이고 자는 양여이며, 호는 송암이다. 임진왜란 공신 오세우의 13세손으로 아버지는 오연원이다. 부인은 전주최씨, 아들 오윤탁, 손자 오인한, 증손자는 오병근이다. 사망한 날은 7월 24일인데 정확한 해는 모른다. 오재효의 묘는 소양면 유상의 아래 자좌[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자방인 정북쪽을 등지고 앉은 자리]이다. 효도는 천성으로 이루어 사친에 그 직분을 다하니 부모께서 ‘재효’라 이름을 했다. 아버지가 이름 모를 고약한 병[악질]에 걸리자 온갖 정성을 쏟았다. 풀뿌리를 캐고 나무를 꺾어 달여 드려도 약효는 없었다. 오재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단지주혈’을 했더니 3일간 더 연명되었다. 그 뒤 어머니도 병이 났다. 이때 역시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 때처럼 했더니 5일 더 연명했다. 거상 3년에 머리도 빗지 않고 씻지도 않아서 행소집례(行素執禮)하니 향당에 칭송이 자자했으며 고을 유림들이 효자로 추천했다. 오재효는 1885년(고종 22)에 명정되었다. 오인한의 아들은 오순보이며, 덕암이 호이니 효자 오재효의 손자이다. 가세가 가난해도 부모의 밥상에는 언제나 맛을 취했고 어머니가 위독함에 넓적다리를 베어 피를 받아 마시게 하니 10일간 생명을 연장케 되었다. 3년상이 다 지나도록 눈물을 거두지 않고 슬퍼했으므로 고을 유림들이 효자로 추천했다. ‘효자 행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오인한지려’의 현판에는 ‘성상 즉위 30년 계사(1893) 6월 명정’이라 되어 있다.
[위치]
화심리 오재효, 오인한 정려각은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유상마을에 있다.
[변천]
1895년(고종 32)에 목조 기와에 나무현판이었으나 1925년에 구조를 현 상태로 바꾸었다.
[형태]
목조 기와가 한 동(棟) 안에 가첨석[지붕돌] 아래 두 돌기둥 사이로 가로 걸친 두 개의 돌 현판이 상하로 놓여 있다. ‘오재효지려’ 편액의 크기는 72×41×7㎝이며, ‘오인한지려’ 편액의 크기는 73×37×7㎝이고, 효자각의 크기는 개석 65×94×52㎝, 직사각 기둥[2개] 14×38×179㎝이다.
[현황]
돌 정려에는 ‘효자 증통훈대부 사헌부감찰 오재효지려(孝子 贈通訓大夫 司憲府監察 吳在孝之閭)’와 ‘효자 행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오인한지려(孝子 行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吳仁漢之閭)’라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