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5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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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原 白氏 各處 先壟記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산97-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도남 |
건립 시기/일시 | 1870년 - 금석문 새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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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4월 15일 - 양주시 향토 유적 제14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빗접바위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산97-1 N° 51′ 01.8344″, E126° 57′ 51.8959″ |
성격 | 금석문 |
관련 인물 | 백인걸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630㎝[길이]|194㎝[높이 최고]|123㎝[높이 최저] |
문화재 지정 번호 | 양주시 향토 유적 제14호 |
[정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는 빗접바위 뒷면에 새겨진 개항기의 금석문.
[건립 경위]
수원 백씨 각처 선농기(水原白氏各處先壟記)는 1870년(고종 7) 정당문학(政堂文學) 백천철(白天鐵) 이래 수원 백씨 주요 인물에 대한 사적과 선영(先塋)의 위치를 정리하기 위하여 바위에 새긴 금석문이다. 건립 연도만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뿐, 금석문을 새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위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산 97-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적면 가납사거리에서 파주시 법원읍으로 가는 지방도 371호선 변에 있다.
[형태]
지름 6m가 넘는 큰 장방형의 5~6기 바위 가운데 하단부의 두 번째로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전면 오른쪽 상단에 가로 74㎝, 세로 100㎝의 구획 안에 ‘수원백씨각처선농기(水原白氏各處先壟記)’의 명문을 음각하였다. 후면에는 길이 630㎝, 높이 최고 194㎝, 최저 123㎝의 화강암 뒷면을 편평하게 하여 6~10㎝의 외곽 안에 50행에 걸쳐 총 516자의 글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음각하였다. 글자 크기는 10㎝ 내외이다. 말미의 50행에 ‘동치 9년 경오 6월’이라고 적혀 있어 글자가 새겨진 연대가 1870년임을 알 수 있다.
[금석문]
백천철을 비롯한 수원 백씨 후손들의 묘소 위치를 하나하나 열거하였다. 백천철의 묘와 더불어 승선 백연(白璉), 밀직부사 백인경(白仁景), 보성현감 백회(白繪), 사헌부지평 백효삼(白效參), 승문원참교 백사수(白思粹), 왕자사부 백익견(白益堅), 사포서별좌 백인호(白仁豪), 좌참찬 백인걸(白仁傑) 등의 묘소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였다. 맨 뒤에는 “먼저 선영의 묘갈을 새겨 영원토록 대대로 남기고자 하였으나 진실로 통탄스럽도다. 재물이 부족함이여! 분파 형제의 행적을 모두 기록할 수 없구나. 이에 산 아래에 여러 종선(宗先)의 것만 새겨놓으니 묘를 보는 자는 이를 용서하기를…….”이라고 적힌 글을 통해 당시 후손의 안타까운 심정을 확인할 수 있다.
[현황]
바위의 형태가 두 쪽으로 쪼개져서 마치 빗접을 세운 것과 같다고 하여 ‘빗접바위’라고 불린다. 또 밤톨이 붙었다가 떨어진 것 같다고 하여 율암(栗巖), 곧 ‘밤바위’라고도 불린다. 주변에는 푸른 소나무와 하얀 돌이 조화를 이룬다. 이 바위는 당나라의 장군 설인귀(薛仁貴)가 밤에 감악산에서 던진 돌이라고도 하고, 밤에 땅에서 솟아난 것이라고도 하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수원백씨각처선농기는 1986년 4월 15일 양주시 향토 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수원 백씨 가문의 사람들과 관련된 사적과 무덤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어 양주 지역의 여러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금석학은 물론 지리학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