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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조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61
한자 漢陽 趙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서동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한양 조씨 - 경기도 양주시
입향지 한양 조씨 - 경기도 양주시
세거|집성지 한양 조씨 - 경기도 연천
세거|집성지 강원도 양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안동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칠곡
세거|집성지 전라남도 무안
세거|집성지 전라북도 남원
세거|집성지 충청남도 보령
세거|집성지 충청북도 음성
세거|집성지 제주도 북제주
세거|집성지 황해도 연백
세거|집성지 황해도 옹진
세거|집성지 평안남도 북청
성씨 시조 조지수
입향 시조 조지수

[정의]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고 양주의 옛 지명의 하나였던 한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개설]

한양(漢陽)은 현재의 경기도 양주시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한양 조씨의 시조는 조지수인데, 덕원부 용진현에서 세거하던 사족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에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를 지냈다고 한다.

[연원]

조선이 개국하자 조지수의 후손들이 한양으로 이주하고 그곳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파는 안정공파(安靖公派) 등 28개 파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총관공파가 가장 번성했다. 고려 후기에 이성계 가문과 중첩된 혼인 관계를 맺었다. 특히 조돈(趙暾)은 홍건적 격퇴에 공을 세워 검교밀직부사를 지낸 후 용성군(龍城君)에 봉해졌다. 조선 시대에 많은 관료를 배출하면서 대표적인 양반 가문으로 자리 잡았다.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학통을 이어받아 사림파(士林派)의 영수가 되어 도덕 정치와 왕도 정치(王道政治)를 구현코자 매진하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죽음을 당했다. 근대에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결성하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조맹선(趙孟善)[1872~1922], 한인회·흥사단 등에서 활동한 조병옥(趙炳玉)[1894~1960] 등이 있다.

[현황]

후손들은 주로 경기도 연천, 강원도 양구, 경상북도 안동·칠곡, 전라남도 무안, 전라북도 남원, 충청남도 보령, 충청북도 음성, 제주도 북제주, 황해도 연백·옹진, 평안남도 북청 일대에 세거한다. 전국적인 인구 규모는 1985년 64,881가구 273,408명, 2000년 95,206가구 307,746명이었다. 양주의 성씨별 인구 통계에 따르면 1985년 185가구 213명, 2000년 319가구 1,103명이었다. 전국적인 인구나 양주 지역 인구 모두 상승 추세에 있다.

[참고문헌]
  • 『양주군지』 (양주문화원, 1992)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http://kosi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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