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춘추공원에 있던 조선 후기 재실 터. 충렬사가 국명으로 철폐될 때 재실(齋室)로 바뀌었다. 1877년(고종 14)에 양산군수 이만도(李晩燾)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학자 김상효(金相孝)의 시문집 『경재유고(敬齋遺稿)』의 잡저 중에 양사재에 관해 기록된 「양산현학양사재기(梁山縣學養士齋記)」를 보면 선비를 양성하는 방법과 제생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