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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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春和堂址 |
영어의미역 | Chunhwa Shrine Site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372-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현라 |
성격 | 정자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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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372-2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의 양산읍성 내에 있던 정자 터.
[변천]
춘화당은 원래 양산읍성 내에 있었다고 전하는 조선시대 정자이나, 현재는 터만 전하고 있다. 춘화당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이를 묘사하는 선현들의 시가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춘화당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시 몇 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거정 작)
말을 몰아 달린 병이 늙음과 함께 겹쳐서/ 동쪽 기둥 앞에 앉아 천천히 발을 걷어 올렸다/ 지는 해 차가운 구름은 오히려 흐릿한데/ 미풍에 작은 비는 다시 가늘디 가늘구나/ 산허리로 난 길은 양장처럼 험난하고/ 포구의 멧부리는 말귀처럼 뾰족하네/ 적막한 손의 회포 긴 밤 내내 서글픈데/ 성문의 북소리는 엄중하게 밤을 알리네.
(권적 차운)
병든 몸 객지의 한이 함께 겹쳐서/ 관아 문을 깊이 닫고 자리 발도 내렸다/ 유배지의 한 겨울에 철도 늦은데/ 남방 하늘 한밤중에 가랑비도 가는데/ 그래도 객지의 꿈을 끌어다 변방에서 아뢰나/ 능히 서글픈 창자가 도려낼 듯 남방의 하늘 뾰족하네/ 뒤척이는 싸늘한 이불 그대로 잠들지 못하나니/ 문득 노쇠한 귀밑털에 새벽 서리가 엄중하구나.
(김이만 차운)
하늘 모습 바다 빛깔 푸름을 겸했나니/ 이따금 고기잡이배가 대발을 마주하네/ 용추 폭포를 굽어보니 천 길 깊이 캄캄하고/ 대마도 평면으로 보니 눈썹 하나가 가느다랗구나/ 찌꺼기를 씻어 없앴으니 모래 빛이 깨끗하고/ 살찐 피부 다 갈아서 산의 바위가 뾰족하구나/ 해지는 높은 대에는 만리 멀리 바람이 불어/ 다시금 남은 술 불러 매서운 한기를 쫓노라.
(윤학동 차운)
해변의 위태한 자취 병이 또 겹쳐서/ 섣달에 누각 창에 게을리 발을 연다/ 죽도에 조수가 밀려오고 바람이 급하게 부는데/ 봉래산에 안개가 걷히고 가는 달이 보이는구나/ 저녁을 알리는 두 개의 봉화는 마음속에 뚜렷한데/ 대궐을 향한 삼각산은 꿈 속에 뾰족하네/ 산마루 구름도 얼어붙고 강독 풀도 여위는데/ 매서운 한파의 위세 세모에 엄하구나.
(윤소 작)
한 선비가 대청의 하늘을 섬기지 아니하여/ 남쪽 고을로 쫓겨나 시골 밭 가에서 칩거하였다/ 한나라에 대한 보국은 호북의 소무를 일컫고/ 주나라를 높이고 독립한 것은 해동의 노중련이었네/ 곧은 충성은 심양의 달에 높은 달무리를 이루었고/ 분개한 의리는 아득히 압록강 안개 속에 엉기었다/ 숨어사는 외로운 이 몸은 원망도 후회도 없건마는/ 우리 임금이 오랑캐에 무릎 꿇은 일천년의 한이로다.
(이만도 「춘화당」)
춘화당 위에서 화창한 봄이 되니/ 외로운 우리 백성 어찌할거나/ 하늘이 양산에만 어찌 비를 안 내리리/ 이 땅은 연주 같아 강물 많이 받는/ 건곤에 옥촉이 비치어 우리를 즐겁게 하고자/ 시절 맞춘 새들은 다른 데 관심 없네/ 남방 와서 두 번이나 매화가 피었는데/ 소아를 마주한 빙혼을 헛되이 저버렸네.
(안효필 작)
춘화당 위에 봄의 화기가 모여/ 퇴근하고 노니는 곳 이 밖에 어디겠나?/ 문과 객관 일이 없어 한낮에 읊조리고/ 나라에 도가 있어 태평시대 칭송하네/ 오동 버들 광풍이 모두 여기 있거니와/ 부들 갈대 정치에 민감함은 정녕 다름이 아니로다/ 술자리 파하고 차로 깨어 신선 음악 연주하니/ 푸른 난간 밖으로 붉은 아가씨 기대었네.
(유수 작)
바람이 고요하니 물결 중심이 거울처럼 열렸고/ 송림 소리 상쾌하여 떠 있는 티끌이 가라앉네/ 돌아가는 말은 맑은 밤 달을 조용히 실었고/ 절승의 전당강에는 횃불 만 개가 움직여오네.
(이인규-「객관 연구」)
생선가게에서는 밥 짓는 연기 일어나고/ 시골집 대밭에서는 죽순이 솟아나도다/
(홍자도-「객관 연구」)
바다가 길게 펼쳐 하늘이 끝나려 하고/ 산이 멀리 보여 눈에 밝음이 더하도다.
[위치]
양산시 북부동 372-2번지에 있는 중앙동사무소 부근으로 추측된다.
[의의와 평가]
춘화당은 지금은 사라진 조선시대 정자로 그 터만 추측할 수 있지만, 양산읍성 내의 문화장소로서 경치가 빼어난 곳에 세워진 여러 정자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춘화당과 관련한 선현들의 시가 많은 것으로 보아, 양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