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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215
한자 徐炳熙
영어음역 Seo Byeonghu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의병장
출신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좌삼리 97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67년연표보기
몰년 1909년연표보기

[정의]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개설]

서병희는 1907년 정미의병 당시 의병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하여 1909년에는 의병장이 되어 독자적인 부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경상도 지방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고 교전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고 때로는 일본 상인을 사살하는 등 항일 의병 활동을 펼쳤다.

[활동사항]

서병희는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한의업에 종사하다가 군대 해산 직후인 1907년 12월 의병장 허위 휘하에 들어갔다. 1908년 4월 윤정의(尹政儀) 의병 부대와 합동으로 울산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고 이어 경주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였다. 1908년 9월 경상남도 산청으로 옮아가 그곳에서 활동 중이던 의병장 박동의(朴東儀) 휘하에 들어가 이학로(李鶴魯)와 함께 산청 두량곡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 이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이학로 부대의 향도관으로 있다가 1909년 3월 독립하여 독자적인 부대 편제를 갖춘 뒤로는 울산·경주·양산·산청·합천·창원·진주 등지의 경상도 전역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부대 편성 직후 합천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였고, 이어 5월 함안군 군북시장에서 일본인을 응징하고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서에 각성을 촉구하는 격문을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7월에는 칠원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에게 중상을 입히고 군자금을 거두었다. 10월에는 진주 가좌면에서 재무주사를 처단하고, 12월 의령과 고성에서도 일본 상인을 사살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09년 10월 창원군 내서면 어율리에서 밀고를 받고 출동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 『양산시지』(양산시지편찬위원회, 2004)
  • 『양산신문』(2005. 7. 25, 2005. 8. 15)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www.people.aks.ac.kr)
  • 공훈전자사료관(http://www.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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