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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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車相明 |
영어음역 | Cha Sangm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강식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차상명(車相明)은 1895년 아버지 차인수(車仁守)와 어머니 이수년(李守年)의 장남으로 동래군 동래면 교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범어사에 들어가 명정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23년 최학전(崔學傳)과 결혼하여 외아들과 두 딸을 두었다. 1945년 부산시 동래구 남산동에서 타계했다.
[활동사항]
서울에서 거족적인 3·1 독립 만세 운동이 계획되던 1919년 2월 하순경, 불교계의 민족 대표였던 한용운(韓龍雲)이 범어사(梵魚寺)로 내려와서 주지 오성월(吳星月)을 비롯하여 이담해(李湛海)·오이산(吳梨山) 등을 만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하여 의논한 후 상경하였다. 당시 범어사 승려였던 차상명은 이들과 함께 사찰 내에 있던 국민학교 과정의 명정학교(明正學校)와 중등학교 과정의 지방학림(地方學林) 학생들을 중심으로 3월 18일의 동래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1919년 3월 17일 오후에 범어사 경내에서 열린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의 졸업생 송별회에 모인 40여 명의 학생들에게 다음날 계획된 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권고하였다. 그리고 야음을 이용하여 4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선리 뒷산과 동래향교 뒷산을 넘어 이튿날 새벽 1시경 동래읍 복천동에 있는 포교당에 도착하여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밀고를 받고 기습한 20여 명의 일본 군경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같은 해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는 대통령 표창,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