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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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汝翊 |
영어음역 | Yi Yeoik |
이칭/별칭 | 비경(棐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변광석 |
[정의]
조선 중기 양산군수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비경(棐卿). 증조할아버지는 이희인(李希仁), 할아버지는 이계수(李桂壽), 아버지는 이응원(李應元)이다.
[활동사항]
이여익은 1644년(인조 22)부터 1649년(인조 27)까지 양산군수로 재임하면서 정치의 교화를 크게 일으켜 여러 가지 폐단을 일소하였으며, 창포정(菖蒲亭)을 새로이 중건하였다. 또한, 정무에 여가가 있을 때마다 고을 자제들을 데리고 학문을 강론하였으며, 양산 지역에 경관이 수려한 산수를 찾아 시를 짓기도 하였다. 이여익은 양산 고을의 여러 유생을 교수할 때 친히 그들과 사인암(舍人巖)이 있는 곳에서 강론하여 그 지역 명칭이 강학대(講學臺)라 불리도록 하였다.
[상훈과 추모]
양산 지역 주민들이 이여익의 공덕을 기려 거사비(去思碑)를 두 곳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