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2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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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選擧 |
영어의미역 | Elec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홍찬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개설]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 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 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교회, 회사, 학교 등 여러 사회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널리 행하여진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중요한 선거는 대통령, 국회의원 등 국가 기관을 선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선거는 국민의 대표자를 직접 선택하고, 간접적으로는 정부와 내각 또는 정치를 선택하며,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 제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선거 제도는 대의민주주의 통치 구조에서 국민의 주권 행사 내지 참정권 행사의 과정으로서 국가 권력의 창출과 국가 내에서 행사되는 모든 권력의 정당성을 국민의 정치적 합의에 근거하게 하는 조직 원리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요 공직 선거로는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의 수반이 되는 최고의 통치권자인 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원이 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지방(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선거 등이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의 공직 선거도 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대통령 선거]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 국회는 단원제 의회와 대통령 간선제, 국무총리 임명에 대한 국회 인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안을 성안하여 같은 해 7월 12일에 제헌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또한 같은 해 7월 17일의 제헌 헌법 공포에 이어 7월 20일 국회에서 실시된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재적 의원 198명 중 196명이 투표한 가운데 이승만 180표, 김구 13표, 안재홍 2표, 무효 1표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총재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1952년 7월 4일에는 이른바 ‘발췌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같은 해 8월 5일 제2대 대통령 선거는 간선제가 아닌 직선제로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경상남도 양산군은 총 선거인 23,444명 중 20,409명이 투표하여 87.1%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이는 전국 평균 88.1% 보다는 다소 낮은 편이었으나 경상남도[부산시 포함] 평균 84.8% 보다는 훨씬 높은 투표율이었다.
1956년 5월 15일 실시된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상남도 양산군은 총 선거인 23,390명 중 22,087명이 투표하여 전국 평균과 같은 94.4%의 투표율을 기록하여 경상남도[부산시 포함]의 평균 투표율인 93.4%를 약간 상회하였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는 제2대 및 제3대 대통령 선거와 같이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했으나 4·19혁명 이후 무효화되었다. 1960년 8월 12일에 재실시 된 제4대 대통령 선거는 의회에서 선출하는 간선제로 다시 전환되었다. 4·19혁명으로 자유당의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의회제로 개헌했기 때문이었다. 선거 결과, 윤보선이 압도적인 지지로 제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2년 12월 17일 대통령 중심제의 제3공화국 헌법이 통과되면서 1963년 10월 15일의 제5대 선거부터 1971년 4월 27일의 제7대 선거까지의 대통령 선거는 다시 국민의 직접 선거로 실시되었다. 경상남도 양산군의 경우 제5대(1963년 10월 15일 실시)·제6대(1967년 5월 3일 실시)·제7대(1971년 4월 27일) 대통령 선거에서 각각 87.8%, 86.4%, 82.1%의 투표율을 기록하여 경상남도[부산시 제외]와 함께 전국 평균 투표율을 훨씬 상회하였다.
그러나 1972년 제4공화국 헌법인 유신헌법의 등장 이후 이전의 대통령 직선제가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에 의한 간접 선거로 전환되어 제8대부터 제10대 대통령 선거까지 지속되었다. 대통령 간선제는 제5공화국의 제11대와 제12대 대통령 선거까지 계속되었는 데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 대신 대통령 선거인단이 선출 주체가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구성을 위한 대의원 선거는 1972년 12월 15일에 실시되었다.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는 모두 7명(정경모, 황우찬, 정성찬, 이태석, 홍상희, 정직상, 박봉수)이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제2대 대의원 선거에서는 모두 14명(정경모, 정석균, 변인수, 이우식, 정진길, 우동신, 전종태, 윤태선, 노복생, 김종택, 차동엽, 김영득, 송기동, 박대현)의 대의원이 선출되었다.
1981년 2월 11일 실시된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양산 지역에서는 모두 27명의 대통령 선거인(김정일, 오근섭, 노복생, 윤태선, 성동춘, 손귀영, 박정창, 양춘차, 노덕관, 이우식, 손규영, 정진성, 안상원, 김성득, 박찬규, 김병하, 차정웅, 김재웅, 최해조, 김상갑, 정성모, 문장호, 윤승자, 김복길, 정성만, 홍종호, 김용원)이 선출되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제6공화국 헌법의 등장으로 대통령 선거 제도는 다시 직선제로 전환되었고 제13대에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 양산시의 경우 제13대(1987년 12월 18일 실시)·제14대(1992년 12월 18일 실시)·제15대(1997년 12월 18일 실시)·제16대(2002년 12월 19일 실시)·제17대(2007년 12월 19일 실시) 대통령선거에서 각각 88.8%·81.1%·79.5%·67.5%·60.0%의 투표율을 기록하여 전국 및 경상남도 평균보다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한편 대한민국 건국 이후부터 2008년 현재까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취임한 역대 대통령은 이승만(초대~3대), 윤보선(제4대), 박정희(제5대~9대), 최규하(제10대), 전두환(제11대~12대), 노태우(제13대), 김영삼(제14대), 김대중(제15대), 노무현(제16대) 그리고 이명박(제17대)이다.
[국회의원 선거]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헌법을 만들기 위한 제헌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정진근 후보가,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서장주 후보가 각각 양산군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4년 5월 20일 실시된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의원과 참의원 양원으로 국회를 구성하게 되어 있었으나 당시 전쟁 중이었던 관계로 민의원 선거만 실시하여 국회를 구성하였다.
제3대와 1958년 5월 2일 실시된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영진이 제3대에는 무소속 후보로, 제4대에는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내리 2선을 하였다. 1960년 7월 29일 실시된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임기태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양산군과 동래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통합되면서 경상남도 제11지구 선거구가 되었다. 1963년 11월 26일 실시된 이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의 노재필 후보가 당선되었고, 노재필 후보는 1967년 6월 8일에 실시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내리 2선을 하였다.
1971년 5월 25일에 실시된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의 신상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는 1개 지역구에서 2인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실시되었다. 이에 따른 선거구의 개편으로 양산군은 김해군과 통합되어 하나의 선거구를 이루게 되었다.
1973년 2월 27일 실시된 이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김영병 후보와 신민당의 신상우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12월 12일 실시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김택수 후보와 신민당의 신상우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제5공화국 하의 제11대 및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도 중선거구제로 실시되었다. 1981년 3월 25일 실시된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이재우 후보와 민주한국당의 신원식 후보가, 그리고 1985년 2월 12일 실시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이재우 후보와 신한민주당의 김동주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민주정의당의 이재우 후보는 내리 2선을 하였다.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국회의원 선거 제도는 다시 소선거구제로 전환되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 양산군은 단독으로 한 개의 선거구를 이루게 되었다.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일민주당의 김동주 후보가 당선되면서 12대에 이어 내리 2선을 하였다.
그리고 제14대(1992년 3월 24일 실시)·제15대(1996년 4월 11일 실시)·제16대(2000년 4월 13일 실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나오연이 차례로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모두 당선됨으로써 내리 3선을 하였다. 이후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김양수 후보가, 2008년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허범도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지방자치단체 선거]
1949년 7월 4일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었고, 1952년 5월 10일 첫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실시되었다.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는 제1대 도의원에 양산군은 무소속 임기태, 동래군은 무소속 김문기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1956년 8월 8일 실시된 제2대 도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변문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1960년 12월 12일 실시된 제3대 도의원 선거에서는 양산군 제1선거구에서는 무소속의 박정훈 후보가, 양산군 제2선거구에서는 무소속의 안종석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 선거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30여 년간이나 중단되었다가 1991년에 부활되었다. 당시 실시된 양산군 의회 의원 선거의 경우 양산읍에서는 지부용과 전덕주가, 기장읍에서는 최원구와 권성학이, 장안읍에서는 손무헌이, 동면에서는 박정창이, 물금면에서는 장선진이, 원동면에서는 이정무가 각각 당선되었으며 경상남도 도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최순장·박봉수·김정근이 각각 당선되었다.
1995년 6월 27일에 실시된 전국 동시 지방 선거의 경우 양산 지역에서는 3명의 도의원(주철주, 성홍룡, 박건우)과 12명의 군의원(오근섭, 전덕주, 박종국, 이부건, 장기성, 김진만, 김종대, 성신건, 장성진, 하영철, 정세영, 김상걸)이 선출되었으며, 양산군수로는 무소속의 손유섭 후보가 선출되었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2명의 도의원(성홍룡, 박건우)과 9명의 시의원(박일배, 장성진, 김종대, 하영철, 정세영, 정경효, 정재환, 이강원, 조문관)이 선출되었으며, 양산시장으로는 무소속의 안종길 후보가 선출되었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제3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2명의 도의원(이장권, 조문관)과 11명의 시의원(이부건, 박일배, 서중기, 전권수, 양정길, 박말태, 양희복, 김상걸, 박종국, 나동연, 김일권)이 선출되었고, 양산시장으로는 한나라당의 안종길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6년 5월 31일에 실시된 제4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오근섭 현 양산시장과 13명의 양산시 의회 의원(김일권, 김지석, 최영호, 박정문, 허강희, 정재환, 나동연, 박말태, 박인주, 이채화, 박인, 김덕자, 박윤정)이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