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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속의 작은 도예 : 불곡 도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B030205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원대

평산마을에는 신한균 도공예 가까운 곳에 불곡 도자기가 있다. 이 집안이 도자기를 하게 된 계기는 아주머니 남편이, 골짜기에 이사 온 지 32년 째 된 신정희 씨 집에 월급쟁이로 허드렛일을 하러 들어가서 그 집에 한 15년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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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 도자기

그 때 그릇을 배우게 되었다. 그 뒤 15년을 신정희 선생님 밑에 있은 뒤, 서운암 절에 삼천불 도자 부처님을 만들다가,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에 도자기를 한다고 해서, 현재 집에 가마를 만들게 되었다. 도자기를 하는 막내아들의 나이는 32살 이다. 막내아들이 부처님 공부를 금강경 공부를 3년째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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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암 절에 삼천불 도자 부처님

가마에 불을 때기 시작하면 보통 36시간씩 불을 때야 한다. 옛날 재래식 가마 그대로 장작으로 불을 땐다. 주로 스님, 보살님, 다도예 하시는 분들 모임을 여기서 자주 한다. 작가들 모임도 많고, 예술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일반인들의 경우는 직접 와서 보고 사간다. 요즘에는 혼수품으로 그릇을 맞춰서 많이 팔린다. 아들이 오카리나를 조금해서 음악을 하시는 분들도 온다.

▶ 도예가의 아내 이영숙(57세) 씨의 사부곡

이씨의 집 입구에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붙어 있는데 그 바위틈에서 붉은 송엽국 한 송이가 피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이씨에게 어떻게 저런 곳에 꽃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심은 것이란다. 평범함 가운데에서 드러나는 예술적 감각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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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송엽국

이씨의 남편 박복재 씨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많 알려진 도예계의 대가인 신정희 씨의 제자이자 동반자였다. 신정희 씨에게 도예를 배운 뒤 32년 전에 이곳에 가마를 짓고부터 사발을 고집하는 스승과 달리 박씨는 신씨가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사발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진사만을 만듦으로써 신씨와 사제지간인 동시에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도자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스승에게 뒤지지 않았던 박씨는 걸레스님 중광과 소설가 이외수 같은 이들과 교유할 정도로 조금은 괴팍하기도 했다. 가마에 작품을 넣기 전이면 반드시 기도를 했던 박씨는 스님들처럼 염불 또한 잘했다고 한다. 어느 승려가 지어준 호 또한 불곡(佛谷)이다.

부산의 대형 백화점에서 부스를 주겠다고 했을 때, 그는 자신 당대에는 부자가 될 수 있을지라도 다음 대에 가서는 장사꾼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사양했다. 작품을 구입하러 온 사람이 아무리 돈을 많이 내어 놓아도 도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작품을 팔지 않았고, 진정으로 도자를 사랑하고 알아보는 이들에게는 그냥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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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이러다보니 생계는커녕 유약이며 가마에 땔 나무 살 돈도 없을 때가 많았다. 이영숙 씨는 묵묵히 채소를 재배하여서는 십리 넘는 신평까지 이고 가서 팔았고, 두부를 만들어서는 통도사 주변 말사에 납품하여 생계를 꾸려나가는 한편 남편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 남편이 8년 전(2000년) 56세의 젊은 나이로 덜컥 세상을 떠나버렸다.

도자기계에서의 계급에는 흔히 허드렛일을 하는 잡부, 반죽하는 꼬막사, 물레대장, 가마의 불을 다룰 수 있는 부(火)대장(불에서 ㄹ을 탈락 시킨 것은 부대장이 최고의 자리인 파괴장의 바로 아래 단계여서 副대장이라는 중의법을 적용코자하는 의미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가마에서 구워져 나온 도자에서 작품성이 없는 것을 과감히 부숴버리는 파괴장으로 나누는데, 박씨는 생전에 스스로 자신은 부대장의 위치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노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십 년간 남편의 곁에서 도자를 지켜봐온 이씨는 직접 작품을 만들어보지는 않았지만 도자에 관한한 높은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뒷바라지에도 불구하고 파괴장이 되지 못한 채 타계한 남편이 아쉽고 원망스러웠다.

일찌감치 둘째 아들의 자질을 알아봤던 그는 박진혁으로 하여금 남편이 못다 이룬 파괴장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 싶었다.

▶ 아호까지 아버지의 대를 이은 박진혁 씨

이영숙 씨의 둘째 아들 박진혁(32세)은 아버지가 가마를 만든 해에 태어나서인지 그의 몸에서는 일찍부터 도예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듯 고등학생 때부터 물레를 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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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혁 씨

외모까지 영락없이 외탁한 박진혁의 예술가적 피의 흐름은 할머니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아라비아 숫자조차 몰랐던 할머니는 나물 뜯고 약초 캐러 다녔던 통도사 주변 경관을 비록 맞춤법은 엉망이지만 예술적 가치 높은 가사작품으로 승화시켜놓고 있음에서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도자 흙(태토)을 가지고 놀았던 박진혁은 아버지를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도자를 배웠다. 대학에서도 도자를 전공했다.

아버지에게서 두루마기 만드는 법을 전수 받았다면 대학에서는 오버코트 만드는 법을 배웠다. 비록 2년 동안이지만 양산대학의 이세훈, 엄성도 교수 밑에서 정말 열심히 도예를 익혔다.

갑작스러운 부친의 타계 후에 박진혁은 일 년 동안 찻잔만 만들었다. 완벽한 찻잔을 만들 수 있었을 때, 이보다 조금 크게 만들면 대접이 되고, 펼치면 접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도자에서 찻잔 만들기는 그림에서 데생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결국 그는 근본에 힘쓰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도 소성을 하기 전에 인근 사찰을 찾아가 이번 작품이 얼마나 근본에 충실했는가를 반추해 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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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혁씨의 도예품

통도사 방장을 지낸 승려 경봉은 좌선을 하고 있노라면 향이 타는 소리와 향의 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제자가, “큰 선생님(박복재 씨)은 소성할 때면 유약 녹는 소리가 들린다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느 정도이신지요” 하고 물었다.

오기가 생긴 박진혁은 이후에 가마 속에서 타고 있는 불의 색을 보지 않고 감각으로만 불을 때었다가 작품 전부를 고스란히 버린 적도 있단다.

밥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밥을 한번 하는 데 솥뚜껑을 여러 번 열어보게 되듯이 가마에 불을 지피게 되면 작품이 완성되어 나오기 전까지 안절부절 전전반측 했다. 그런데 도자를 시작한 지 만 20년이 되던 지난해(2007)부터는 가마에 불을 땔 때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파괴장이 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한없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그는 도자를 구입하러 온 이들에게 아직도 작품 값을 받지 않고 다만 그릇 값만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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