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575 |
---|---|
한자 | 西湖里小西湖支石墓群 |
이칭/별칭 | 서호리 소서호 지석묘,서호 고인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 소서호 마을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영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10월 24일~2005년 12월 31일 - 서호리 소서호 고인돌 떼, 고인돌 발굴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9월 12일~2006년 11월 15일 - 서호리 소서호 고인돌 떼, 고인돌 발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6년 - 서호리 소서호 고인돌 떼 유물 출토 |
소재지 | 서호리 소서호 고인돌 떼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 소서호 마을 |
출토 유물 소장처 |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남리 186-1 |
성격 | 고인돌 |
양식 | 개석식|묘역식 |
크기(높이,지름) | 160㎝[가군 1호 고인돌 길이]|150㎝[가군 1호 고인돌 폭]|80㎝[가군 1호 고인돌 두께]|375㎝[나군 1호 고인돌 길이]|300㎝[나군 1호 고인돌 폭]|55㎝[나군 1호 고인돌 두께]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 소서호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위치]
서호리(西湖里) 소서호(小西湖) 고인돌 떼는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 소서호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소서호 마을 입구에서 북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민묘(民墓) 뒤편 구릉 상에 10여 기가 분포하며, 아래쪽에는 김해 김씨의 재각이 있다. 나군은 소서호 마을 입구에서 구(舊) 도로를 따라 독천 방향으로 약 500m 가서 좌측으로 도로와 밭이 경계되는 지점에 있는 민묘 바로 옆에 2기가 분포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소서호 고인돌 가군은 영암 국도 대체 우회 도로[청호-삼호]의 건설로 2005년과 2006년에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가 발굴 조사하였다. 발굴 조사는 11기 고인돌 중 공사로 훼손될 1호만 대상이 되었고, 공사 구역 내에서 덮개돌이 없는 무덤방 18기가 조사되어 적어도 30여 기가 군집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6년 목포 대학교 박물관 지표 조사 시 서호 고인돌군으로 보고된 것인데 자연 마을 명칭에 따라 1999년 조사 시 ‘서호리 소서호 고인돌 가군’으로 정정되었다.
[형태]
1호 고인돌은 길이 160㎝, 폭 150㎝, 두께 80㎝로 소형의 괴석형 덮개돌 밑에는 받침돌 5개가 괴어 있는 기반식 고인돌이다. 묘역 시설이 되어 있고, 받침돌 중앙에 판석 1매만 놓여 있을 뿐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1호 고인돌 주변과 구릉 사면부에서 총 18기의 무덤방이 발견되었다. 무덤방들은 판석을 이용한 돌널형과 깬돌을 이용한 돌덧널형, 판석과 깬돌을 이용한 혼축형 무덤방이 동일 공간 안에서 공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길이 30㎝에서 90㎝의 소형 무덤방이 10기가 발견되었으며, 방형의 묘역 시설 안에 무덤방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나군은 2기로 모두 상석의 두께가 얇고 민묘 조성으로 이동되어 있다. 또한 상석의 가장자리가 파괴되어 떨어져 나간 상태로 포개져 있다. 1호 고인돌의 상석 규모는 길이 375㎝, 폭 300㎝, 두께 55㎝ 정도이고,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출토 유물]
가군에서는 붉은 간 토기, 간 돌검 조각 2점, 돌 화살촉 2점, 홈자귀 1점, 가락바퀴[紡錘車] 2점, 돌칼 6점, 돌끌 3점, 갈판 1점,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나군에서는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현황]
2013년 현재는 발굴되지 않은 고인돌만 김씨 제각 뒤 야산에 잔존되어 있다. 나군은 현재 민묘 조성으로 이동된 것이다. 또한 서호리 소서호 고인돌 떼는 ‘서호리 소서호 지석묘’로도 불린다.
[의의와 평가]
발굴 조사된 가군은 덮개돌 없이 발견된 무덤방이 크게 2개 군집으로 구분되며, 1호 고인돌 주변에서 다량의 석기가 발견되었다. 특히 돌칼을 2등분으로 절단해 투기한 현상이 확인되어 당시 제의(祭儀)를 추론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방형의 묘역 시설에 소형 무덤방을 가진 무덤은 서호리 소서호 고인돌 떼의 한 특징으로 고인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