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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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巖奄吉里岩刻埋香銘 |
이칭/별칭 | 엄길리 암각 매향명,엄길리 암각 매향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산85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최연식 |
건립 시기/일시 | 1344년 -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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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4월 17일 -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 보물 제1309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 보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암 엄길리 암각매향명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산85 |
성격 | 명문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너비,두께) | 103㎝[가로]|90㎝[세로]|3~6㎝[글자 크기] |
소유자 | 국가 |
관리자 | 영암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철암산 바위에 새겨져 있는 고려 후기 매향 명문.
[개설]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靈巖奄吉里岩刻埋香銘)은 엄길리 철암산(鐵岩山)[120m] 7부 능선에 있는 속칭 글자 바위의 한쪽 작은 틈새 안쪽에 새겨져 있다. 주변 서호면 청용리, 장천리 일대의 지석묘를 발굴 조사하던 중 현지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총 18행 129자가 음각(陰刻)되어 있다. 조성된 시기는 1344년(충혜왕 5)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대부분의 명문(銘文)을 판독할 수 있으며 조성 시기, 목적, 매향 장소, 매향 집단, 발원자, 화주와 각주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1988년 12월 21일에 전라남도 지방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17일에 보물 제1309호로 승격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또한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은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비’로도 불린다.
[위치]
엄길리 일대는 영산강의 만입처(灣入處)[현 간척지]로 은적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해수와 마주치는 지점이다. 영암만을 사이에 두고 구림천과 마주보는 천혜의 양지로서 대개 매향비들이 위치하는 입지 조건과 동일하다.
[금석문]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의 내용은 살펴보면 “석가 열반 후 2349년 갑신년[1344, 충목왕 1] 8월 13일 용화초회(龍華初會)를 공양하였다. 고을말 북촌 ▨을포(▨乙浦)에서 미륵계(彌勒契) 안의 천만인. (발원자는) 천을말분(千乙末分) 김대▨(金大▨)·김금물(金今勿)·신일소(申日召)·김동화(金冬火)·김양병(金洋並)이고, 화주(化主)와 새긴 사람은 급암(及岩)·진암(珍岩)·대▨(大▨)이다[釋迦湟槃後二千三百/ 四拾九年甲申八月十三日/ 埋 香龍華初会供養// 之▨古乙未/ 北村去▨因浦/ 埋置契▨/ 古乙未堵人/ 化主 及岩// 同金德中洋並/ 同金▨泄冬火/ 同申上佑昆召/ 同金炳▨分勿/ 同金▨佑▨▨// 名▨ ▨▨千乙未分/ 彌陀契內/ ▨▨契內/ 千万人/ ▨▨/ 化主大人// 刻生/ 珍岩].”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은 석태가 많이 끼었으나 자연 암벽의 좁은 통로 한쪽 벽에 음각되어 있어 은폐 혹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던 관계로 명문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암벽은 특별히 정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하 행렬이 정연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보아 매향 주도자, 연대, 위치, 매향 집단, 발원자가 모두 밝혀졌으며 암각 글자는 총 18행 129자이다.
[의의와 평가]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은 여말 선초의 매향 의식과 지방의 민간 신앙을 살피는 중요한 자료인 동시에 향촌 공동체 조직의 실상을 반영하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특히 연대를 불기(佛紀)로 쓴 점이나, 미륵계(彌勒契)라는 신앙 결사가 보이는 점, 당시의 이두문과 지방 관직 명칭이 나타나는 등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은 전라남도의 매향 자료 중 가장 앞선 시대의 것이다. 또한 매향 의식에 ‘미타계’라는 불교 결사와 함께 관원들이 연결된 인상이어서 불교가 순수 신앙 결사 내지 민중 신앙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