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622 |
---|---|
한자 | 靈巖道岬寺道詵國師-守眉禪師碑 |
이칭/별칭 | 도갑사 도선 국사 수미 선사비,도갑사 도선 수미 양 대사비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연식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826년 - 도선 출생 |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898년 - 도선 입적 |
건립 시기/일시 | 1653년 4월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5월 22일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지방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보호각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1월 26일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보물 제1395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보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도갑사 도선 국사·수미 선사비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
성격 | 비 |
관련 인물 | 도선|수미 |
재질 | 화강암[귀부 및 이수]|대리석[비신] |
크기(높이,너비,두께) | 5.17m[전체 높이]|2.6m[비신 높이]|1.42m[폭] |
소유자 | 도갑사 |
관리자 | 도갑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에 있는 승려 도선과 수미의 행적을 기록한 조선 후기의 비.
[개설]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靈巖道岬寺道詵國師-守眉禪師碑)는 1653년에 전라남도 도갑사에 세워졌다. 통일 신라 때 승려인 도선 국사와 조선 시대 승려 수미 왕사의 행적과 더불어 비의 건립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귀부의 사선문(斜線紋)과 비신 측면의 운룡문(雲龍紋)이 특히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는 ‘도갑사 도선 국사 수미 선사비’와 ‘도갑사 도선 수미 양 대사비’로도 불린다. 1974년 5월 22일 지방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1월 26일에 보물 제1395호로 승격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는 1636년(인조 14) 4월에 건립을 시작하여 17년 후인 1653년(효종 4) 4월에 완료되었다. 비문에 따르면 본래 이곳에 도선 국사의 고비(古碑)가 있었는데 비바람으로 글자가 마멸되고 귀부의 머리가 결락되는 등 훼손이 심하여 다시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도갑사를 중창한 옥습 대사(玉習大師)가 3년에 걸쳐 각 사찰에 다니면서 찬조를 구하는 한편, 신도들로부터 모금하고 한양까지 가서 비문을 청탁하였다. 비석에 사용된 돌은 전라도 관찰사의 도움으로 부역을 통해 여산(礪山)에서 운반해 왔으며, 돌이 도착한 이후 7개월 만에 공사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비문은 전면에 2개, 후면에 1개 등 모두 3개의 내용으로 구분되어 일반적인 비문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세 부분의 명문이 모두 동일한 건립 연대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부분의 찬자(撰者)와 서자(書者)가 모두 다른 것은 비석을 다시 세우기로 계획한 시점부터 모금 기간과 공사 기간을 합쳐 21년이라는 긴 기간이 걸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형태]
큰 석재로 지대석을 깔고 그 위에 귀부(龜趺)[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와 이수(螭首)[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를 갖춘 비를 올렸다. 지대석 둘레에는 판석을 깔았다. 귀부의 앞쪽은 방형이지만 뒤쪽은 귀부의 모양을 따라서 ‘ㅅ’자 형으로 주서하여 전체적으로는 육각형의 형태이다.
귀부는 화강암으로 머리를 오른쪽으로 약간 튼 형태이며, 상·하 각 8개의 이빨로 여의주를 물고 있다. 코는 널찍하며, 반구형의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다. 등에는 전형적인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을 정연하게 음각하였다. 네 개의 발 중 앞발은 5조(爪), 뒷발은 3조의 발가락이 표현되었으며, 꼬리는 왼쪽으로 접어서 뒷발에 붙였다. 귀부의 등에 얇은 받침을 깔고 그 위에 비신을 올렸는데, 받침의 네 면은 바깥으로 살짝 접어 올린 후 꽃무늬를 조각하였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전면과 후면에 명문이 있으며, 전면 상단에 가로로 ‘월출산 도갑사 도선 국사 수미 대선사 비명(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이라고 전서(篆書)되어 있다. 비신의 양 측면에는 운룡문을 양각하였는데, 매우 사실적이고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수 역시 화강암으로 조성하였는데, 하단에는 28잎의 앙련(仰蓮)과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그 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각각 이수의 양 끝을 문 채로 엉켜 있는 형상을 조각하였다.
[비의 내용]
비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앞면에는 도선의 출생과 입당 뒤 구도한 내력, 명당 택지의 업적, 도갑사와의 인연을 서술한 후 비를 새로 세우게 된 내력을 간략히 밝히고 명(銘)을 적었다.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이 비문을 짓고 예조 판서 오준(吳竣)이 비문을 썼으며, 형조 판서 김광욱(金光煜)이 전액(篆額)을 썼다. 대략 3분의 2 지점부터는 더 작은 글씨로 이 비석을 세우게 된 배경과 구체적인 건립 과정을 기록하였는데, 홍문관 부수찬 이수인(李壽仁)이 짓고 성균 진사 김시간(金時暕)이 글씨를 썼다. 뒷면에는 도갑사의 역사와 비문 건립 과정에 관한 간략한 내용과 비석 건립에 참여한 시주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홍문관 교리 정두경(鄭斗卿)이 짓고, 성균 진사 김비(金棐)가 글씨를 쓰고, 성균 진사 김시간(金時暕)이 전액을 썼다.
‘월출산 도갑사 도선 국사 수미 대선사 비명(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이라고 하여 비의 주인공이 도선과 수미 두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 기록된 내용은 도선의 업적과 비석 건립 과정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고 수미에 대해서는 천순(天順) 연간에 도갑사 법당을 중창하였다고 간략히 언급하는 데 그치고 있다.
[현황]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위치한 도갑사 경내에 있다. 대웅보전과 성보 박물관 사이 산길을 통해 약 5분 정도 올라가면 만나는 부도전 옆의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비신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풍우에 의한 훼손을 막기 위해 2000년에 보호각을 건립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는 각 부의 양식에서 미술사적으로 조선 후기 조각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귀부는 일반적인 예와 달리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비신 역시 양 측면에 조각된 운룡문이 매우 힘찬 기상과 율동감을 지니고 있어 당대 최고 수준의 작풍을 보여 주고 있다.
아울러 대부분의 비석의 주인공이 한 명인 것에 비해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는 도선과 수미 2명을 표방하고 있어 독특한 예라 할 수 있으며, 비석이 건립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이 방면의 기술사 연구에도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