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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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岩祠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은정 |
건립 시기/일시 | 1972년 - 국암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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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4년 - 국암사 중수 |
현 소재지 | 국암사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 |
성격 | 사우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낭주 최씨 문중 |
관리자 | 최천호 |
[정의]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낭주 최씨 문중 사우.
[개설]
국암사(國岩祠)는 1972년에 세워진 낭주 최씨(朗州崔氏)의 문중 사우로, 최지몽(崔知夢)[907~987], 최안우(崔安雨)[1361~?], 최진하(崔鎭河)[1600~1673], 최몽암(崔夢嵒)[1718~1802]을 배향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낭주[영암의 옛 이름]를 본관으로 하며, 영암 지역에 거주하였던 인물들이다.
최지몽의 원래 이름은 최총진(崔聰進)이다. 최지몽은 경사(經史)·천문(天文)·복서(卜筮)에 능통하여, 고려 태조가 꿈을 풀이하도록 하였다. 태조의 꿈 이야기를 듣고 삼한을 통합하여 다스릴 꿈이라 해석하자, 태조는 ‘지몽’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최안우는 고려가 망한 후 사직하고 지금의 나주시 봉황면 만봉리로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 최진하는 도봉 서원에서 수학하였으며, 구림 대동계에 참여하였던 인물이다. 최몽암은 1750년(영조 26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공조 참판 등의 관직을 지내다가 영암으로 귀향하였다.
[위치]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다. 영암 도기 박물관 옆으로 ‘국암사 입구·국사암 입구’라고 쓰인 표지석을 따라 20m 정도 가면 국암사가 나온다.
[변천]
1972년에 창건되었으며, 2003년부터 2004년까지 한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형태]
국암사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낭주 최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매년 음력 2월 두 번째 정일(丁日)에 제사를 지내다가, 현재는 음력 3월 첫 번째 정일(丁日)로 날짜를 옮겨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낭주 최씨 문중과 영암의 유림들이 참여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