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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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溪祠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동계 마을 314번지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성운 |
건립 시기/일시 | 1907년 - 동계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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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1년 - 동계사 중수 |
현 소재지 | 동계사 -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동계마을 314번지 |
성격 | 사당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관리자 | 최재형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해주 최씨 문중 사당.
[개설]
동계사(東溪祠)는 최충, 최만리, 최경창, 최석징, 최치헌 등 해주 최씨(海州崔氏)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최충(崔沖)[984~1068]의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이고, 해주 대녕(大寧) 사람이다. 고려 목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사람으로서 정치를 논하고 국사를 경륜하여 국가를 위해서 구재(九齋)를 창시하였으며,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 제자들은 최충을 ‘해동 공자(海東孔子)’라고 칭하였다. 문종 때에 추충찬도좌리공덕홍문의유보정강제공신(推忠贊道佐理公德弘文懿儒保定康濟功臣)에 책봉되고 문하시중에서 중서령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최만리(崔萬理)[?~1445)의 자는 자명(子明)이며, 해주 사람으로 문헌공 최충의 후손으로 최하(崔荷)의 아들이다. 조선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로써 중시(重試)를 거쳐 집현전 부제학과 강원도 감찰사를 지냈으며, 청백리(淸白吏)로 꼽힌다. 훈민정음 창제를 극히 반대하였으며, 시호는 공혜(恭惠)이다.
최경창(崔慶昌)[1539~1583]은 해주 사람이고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이다. 최충의 후손으로 최수인(崔守仁)의 아들이며 일찍이 송천과 양청련 밑에서 글을 배웠다. 선조 무진년에 문과 급제하여 종성부사를 지냈으며, 이이(李珥)·송익필(宋翼弼) 등과 흔히 28숙(宿)이라 불리고, 백옥봉(白玉峰)·이손곡(李蓀谷) 등과 함께 삼당 시인(三唐詩人)으로 칭해지기도 하였다.
최석징(崔碩徵)[1604~1698]은 해주 사람으로 자는 지경(之卿), 호는 양파(陽坡)이다. 최치헌(崔致憲)[?~?]의 자는 내원(乃元)이며 호는 만성제이다. 순조 병자년에 명경과에 올랐다.
[위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동계 마을 314번지에 있다.
[변천]
1907년 최만리, 최경창, 최석징, 최치헌을 봉안하고 제사를 올리다가 1993년에 향중 유림이 발의하여 최충을 주향하고 4위를 배향하였다. 1907년 건립된 동계사를 1991년 후손들이 중수하였다.
[형태]
대지 400평에 내삼문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현황]
동계 마을 해주 최씨 문중은 동계사 내에 2004년 영암군의 지원으로 고죽 기념관을 지었다. 영암문화원에서는 2013년에 최경창 선생을 기리기 위해 『고죽집』을 번역 발간하였다. 2013년 현재 최경창의 14대손인 최재형 등이 동계사를 지키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계사는 나라에 공을 세운 영암의 다재다능한 위인들을 기리고 있다. 특히 최경창은 서정적이고 호남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드러내며, 더 세밀하게 묘사한 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동계사는 구림 전통 마을 문화유산으로서 옛 문화를 쉽게 알 수 있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