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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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鬱府 |
이칭/별칭 | 익양,영양,영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영호 |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신라 말기의 행정구역.
[형성 및 변천]
고울부(高鬱府)는 절야화군(切也火郡) 혹은 임고군(臨皐郡)으로 불리던 영천 지역이 신라 말기에 명칭이 개칭된 지역이다. 절야화군[임고군]이 고울부로 개칭된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925년(고려 태조 8) 10월 고울부 장군 능문(能文)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에 투항하였다든가 927년(태조 10) 9월에 견훤(甄萱)이 신라의 고울부를 습격한 사실에서, 적어도 이 무렵에는 고울부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 말기 새로운 지방 제도로서 부(府)의 탄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라 말 고울부로 불렸던 영천 지역은 고려 시대에 영주(永州)라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에 영주자사(永州刺史)로 삼아 1018년(현종 9)에 동경유수관 경주에 속하였고,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를 두고 후에 올려 지주사(知州事)를 삼았다. 별호(別號)를 익양(益陽) 또는 영양(永陽)이라 하였다.
[관련 기록]
『고려사』 권1 세가(世家) 925년(태조 8) 10월조에 “기사(己巳)에 고울부 장군 능문(能文)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투항하였는데, 그 성이 신라의 왕도에 근접하고 있으므로 노고를 위로하여 돌려보내고. 다만 휘하의 시랑(侍郞) 배근과 대감(大監) 명재, 상술(相述) 궁식 등만을 머물러 두었다[己巳 高鬱府將軍能文 率士卒來投 以其城近新羅王都 勞慰遣還 唯留麾下侍郞盃近大監明才相述弓式等]”라고 하였으며, 927년(태조 10) 9월조에는 “견훤이 근품성을 공격하여 불사르고 나아가 신라의 고울부를 습격하여 경주 가까이까지 핍박하니 신라 왕이 연식을 보내어 급함을 알려왔다[甄萱攻燒近品城 進襲新羅高鬱府 逼至郊畿 新羅王遣連式 告急]"라고 하였다.
또, 『고려사』 권 57, 지리지 ‘영주’ 항목에 “고려 초에 신라 임고군을 합하여 도동 임천 2현을 두었다[고울부라고도 한다][永州 高麗初 合新羅臨皐郡 道同臨川二縣 置之(一云高鬱府)]” 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