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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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居祖寺靈山殿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거조길 400-67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375년 8월 20일 - 영천 거조사 영산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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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754년 - 영천 거조사 영산전 중수[1754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86년 - 영천 거조사 영산전 번와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98년 - 영천 거조사 영산전 중수[1898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2년 12월 20일 - 영천 거조사 영산전 국보 제1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천 거조사 영산전 국보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천 거조사 영산전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거조길 400-67[신원리 622] |
성격 | 불전 |
양식 | 주심포 맞배집 |
정면 칸수 | 7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은해사 |
관리자 | 은해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에 있는 거조암의 주 불전.
[개설]
은해사 거조암은 738년(신라 효성왕 2) 원참 조사(元旵祖師)가 창건했다는 설과 「은해사사적비문(銀海寺史蹟碑文)」에 742-764년(신라 경덕왕대)에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뚜렷하지 않다. 최근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경내 일부의 발굴조사에서 통일 신라 시대 유적·유물과 함께 거조사(居祖寺) 명의 명문와가 출토되었다. 따라서 거조사는 1190년(명종 20) 보조 국사가 은거하며 정혜사(定慧社)를 결성하고 근수정혜결사문(勤修定慧結社文)을 발표하기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아울러 영천 거조사 영산전은 1375년 8월 20일(우왕 원년) 건립의 상량문이 확인됨에 따라 건립 연대가 명확한 고려 후기의 주심포 건물이다. 또 건물 내부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혜림 법사와 법화 화상이 모신 오백 나한를 모시고 있다. 영산전 앞 마당에는 나말려초(羅末麗初)의 것으로 추정되는 은해사 거조암 삼층 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4호]이 있다. 근대에 은해사의 암자로 바뀌어 거조암이 되었다.
[위치]
영천 거조사 영산전은 은해사 서북쪽의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다. 이곳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내에서 919번 지방도[금송로]를 타고 은해사로 진입하는 청통 네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1.8㎞ 가량 가면 계지리 계지교를 건너자마자 좌측 거조길로 계지리 강변마을, 신원리 광대정·갱빈·새터·술래바탕·중신원 마을을 차례로 거쳐 4.5㎞가량 들어간 신원지 서편 산사면에 있다.
[변천]
영산전은 고려 말인 1375년(우왕 원년) 8월 20일 거조사 주 본전(本殿)으로 건립된 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오백 나한을 모시고 있다. 1754년(영조 30) 중수, 1786년(정조 10) 번와중수, 1898년에 중수 상량했다. 아울러 1912년 은해사 사내 말사로 통합되면서 거조사에서 거조암으로 바뀌었다. 1970년 7월 해체복원공사를 실시하였고, 1978년 6월 번와공사와 함께 최근까지 수 차례 보수·정비가 있었다.
[형태]
영산전은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구성이다. 간살은 전·후면 및 양 측면의 어칸이 협칸보다 넓게 설정되었고, 내부에 2열의 내진 고주를 배열하다.
주향은 동북향이며, 전방의 중정에는 영산전 중심축선에서 약간 벗어나 나말려초 제작으로 추정되는 삼층 석탑이 있다. 편액은 설현신(薛玄愼)이 쓴 것이다. 건물은 잡석으로 높직하게 축조하고 전면으로 3개의 돌계단이 설치된 기단 위에 서 있다. 기단 위에는 자연석 초석을 놓고 배흘림 기둥을 세워 창호와 벽체로 구체부를 구성하였다.
출입문은 전면 어칸에만 설치되어 있다. 외부에는 삼분합의 정자살문을 두고, 내부에는 두짝의 판문을 달아 이곳으로만 출입하도록 했다. 그 외 전면의 차협칸과 차차협칸 4칸, 양 측면 어칸, 후면 어칸에는 각기 붙박이살창을 두어 실내의 채광을 꾀하고 있다. 특히 측면 어칸에는 고창 각 1개씩을 두어 실내 채광의 효과를 배가시켰다. 그 외 벽은 토벽에 회를 발라 마감했다.
내부는 중앙부에 단칸 규모로 불단을 마련하여 그 위에 삼존불을 안치하고 후불탱을 걸었다. 그 외 내부 바닥은 전을 깔고, 전·후퇴칸과 측면으로 별도의 긴 불단을 후설하고 총 526분의 석조 나한상 및 불상을 배열 봉안하고 있다.
상부 가구는 2고주 5량가이다. 내고주상에 대량을 걸고, 고주와 평주 사이에는 퇴량으로 연결하였다. 주상부에는 창방을 걸고 주상에 주심포계 공포를 짜아 보, 도리를 받쳐 맞배지붕이 이루어지도록 결구했다. 특히 평주 상부에 창방과 헛첨차를 직교되게 사괘를 짜아 그 위에 주두와 소로를 올려 놓았다.
주두 위에 첨차와 살미가 다시 직교되도록 짜아 외부로는 외목 첨차와 결구되어 보머리, 단장여 등을 받게 했다. 살미 외단 끝은 쇠서형을 뽀쪽하게 깎아 뻗은 형이고, 그 내부에서는 퇴량 밑에서 양봉을 받쳤다. 첨차는 마구리를 사절하고, 하단부는 뚜렷한 연화두식(蓮花頭式)형 곡선을 조각했다. 대량 위 중앙에 제형의 판대공을 세우고 그 위 화반형 부재와 첨차를 결구한 포대공을 짜아 종도리를 받도록 했다. 종도리 측면에는 인자(人字)형의 내반 곡을 가진 솟을합장을 세워 구조적 보강과 마감을 꾀하고 있다. 대량과 퇴량의 단면은 항아리형으로 다른 고려 시대 건물보다 곡이 약하다. 천장은 서까래라 그대로 드러난 연등 천장이고, 지붕은 홑처마에 한식기와를 이은 맞배형이다.
[현황]
은해사 거조암은 삼국 시대에 창건된 고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고려 말에 건립된 본전인 영산전과 조선 후기의 산신각, 최근에 신축된 영산루, 요사채 등의 건물로 구성된 단출한 가람이다. 영산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오백 나한을 모신 유서깊고 영험있는 나한 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의의와 평가]
영산전은 고려 후기에 건립된 거조사의 주 불전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려 후기 건물인 봉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조사당, 수덕사 대웅전과 더불어 대표적인 주심포 건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내부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총 526분의 석조나한상 및 불상을 배열 봉안하고 있다.
특히 배흘림기둥, 헛첨차 있는 주심포 두공, 화반형 부재에 첨차가 결합된 제형 포대공, 쇠서 및 첨차의 세련된 곡선, 내반된 곡을 이룬 솟을합장의 결구, 구체부의 살창 및 고창의 존재 등은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따라서 일찍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