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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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崇烈堂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숭렬당길 1[성내동 9-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태훈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전기 무인 이순몽(李順蒙)이 살던 집.
[개설]
위양공(威襄公) 이순몽[1386~1449]의 본관은 영천. 조선 전기 세종 때의 문신으로 대마도와 여진족 정벌에서 큰 공을 세워 복장군(福將軍)이라 불렸다. 이순몽은 1417년 무과에 합격해 의용위 절제사(義勇衛節制使)·우군 절제사(右軍節制使)·도총제(都摠制) 등을 거쳐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를 지냈다. 사후 위양(威襄)이란 시호가 내려졌고, 저서로는 『위양공실기(威襄公實記)』가 전한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시에 있고 영천 숭렬당 경내 위양공사(威襄公祠)에서 제향하고 있다.
[위치]
영천 숭렬당은 경상북도 영천시 숭렬당길 1[성내동 9-2]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영천 숭렬당은 조선 세종 때 대마도와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운 이순몽 장군의 집으로 1433년(세종 15)에 중국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1970년 7월 23일 보물 제52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지금은 장군의 위패를 봉안하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쓰고 있다.
[형태]
영천 숭렬당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인데 그 양쪽 끝 칸에 날개를 단 듯 지붕을 덧달았다. 따라서 전체로 보면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모양은 맞배지붕이 팔작지붕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이고 있는 지붕 형식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새부리 모양으로 뻗쳐 나왔다. 평면은 가운데 3칸보다 양쪽 끝 칸이 한 자씩 좁으며 건물 안쪽의 천장은 가구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미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천 숭렬당은 구조가 조선 전기의 수법을 보이고 있지만 일부 재료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들이 조선 후기의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조사결과 몇 차례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대체로 검소하고 건실하게 지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