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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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宜堂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포은로 1611-15[성곡리 7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경재 |
건립 시기/일시 | 1726년 - 사의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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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802년 - 사의당 이건, 중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02년 - 사의당 중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5년 8월 18일 - 사의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사의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7년 3월 - 사의당 복원 |
이전 시기/일시 | 1977년 - 사의당 이전 |
현 소재지 | 사의당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78 |
성격 | 서당 |
양식 | 3량가|홑처마|맞배기와집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정찬식 |
관리자 | 정찬식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정씨 사형제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건립한 서당.
[개설]
사의당은 1732년(영조 8)에 정중호(鄭重鎬)·정중기(鄭重岐)·정중범(鄭重範)·정중락(鄭重洛) 사형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학문 연구와 인재 양성을 위해 삼귀리에 건립한 건물이다.
[위치]
영천 시내 시청 오거리에서 포항·안강 방면 25번 국도를 타고 조교 삼거리까지 진행한 다음 임고면 방면으로 좌회전한 후 69번 지방도를 타고 5km 가량 가면 임고면소재지가 나온다. 임고면에서 자양면 방면으로 6km가량을 더 진행하면 영천호를 만나게 되고 영천호를 우측에 두고 5.5km 가량을 더 가면 자양면소재지가 나온다. 자양면사무소에 이르기 전에 좌측으로 기룡산[해발700m] 줄기가 시작되는 곳에 영천댐 건설로 인한 집단 이전지가 있는데 이곳에 사의당이 있다.
[변천]
사의당은 1726년 삼귀리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퇴락이 심해 1802년 용산리에 이건 중창했다. 1977년 3월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해 현재의 장소로 이전, 복원하였다. 1975년 8월 1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사의당은 강학 공간인 사의당과 수의헌 두 건물과 행랑채, 고방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사지를 이용하여 짜임새 있게 배치하였다. 대문 간채를 들어서면 고방채와 사의당 측면이 보이고 두 건물 사이로 난 통로를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 너머에 수의헌 정면이 바라보이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튼‘ㄷ’자 형태이다.
사의당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평면 구성은 왼쪽에서부터 2칸 마루에 방 3칸이 붙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경사지 위에 5벌대 자연석 기단을 마련한 후 초석을 놓고 기둥을 올린 형태의 3량 가 건물로 2칸 대청 전면에만 원기둥을 사용했고 기둥 상부에는 소로를 수장했다.
대청 전면에 계자각 난간을 부설하고 우측방 전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해 난간 부분과 이어지도록 했다. 창호는 청방간에는 4분합들문을 달았고 대청 배면과 측면에는 외짝바라지창과 쌍여닫이창을 각기 달았다. 아울러 방 전면과 배면에는 쌍여닫이 세살문과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고 방과 방 사이에는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아두고 있다.
수의헌은 정면 6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좌측으로부터 정지 1칸, 온돌방 2칸, 마루 2칸, 방 1칸을 붙여 구성하고 있다. 대청 전면과 올돌방 전면에는 쪽마루를 덧달아 공간 확장을 꾀했으며 정지와 방 사이에는 다락을 설치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창호는 청방간에는 외여닫이 굽널띠살문을 대청 배면에는 쌍여닫이 띠장문을 각기 설치했고 방 전면에는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고방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상인방과 하인방 사이에는 판벽 처리하고 상인방과 장혀 사이에는 심벽 처리했다.
좌측으로부터 2칸은 마루를 드린 형태로 가운데를 벽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우측 1칸은 전면에는 따로 벽을 설치하지 않았다. 행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가운데 대문칸을 기준으로 온돌방 1칸씩을 좌·우에 붙여 구성하고 있다.
[현황]
사의당은 성곡리에 이전할 터를 마련할 당시, 기존 건물의 배치를 고려해 넓은 대지를 마련한 다음 건물들을 배치했기 때문에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경사지를 적절히 활용하여 적절히 건물을 배치한 후 현재까지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전이 이루어진 후에는 크게 개변된 부분은 확인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사의당은 영천댐 건립에 따라 이전하게 되었으며 함께 이전해온 전통 가옥들이 주변에 모여 있어 관리가 쉬운 편이다. 사의당이 자리한 집단 이전단지에는 사의당을 포함한 다양한 성격의 유적들이 함께 있고 영천호가 주변에 있어 관광 자원으로써 활용하기 좋은 상태지만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교통편이 불편한 상태이다. 관계기관과 문중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한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영천의 문화 자원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