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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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英陽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집필자 | 전민욱 |
본관 | 영양 - 중국 하남성 여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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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영양 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 |
세거|집성지 | 영양 김씨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 |
세거|집성지 | 영양 김씨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산택리 |
세거|집성지 | 영양 김씨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 |
세거|집성지 | 영양 김씨 -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 |
세거|집성지 | 영양 김씨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쌍호2리 |
세거|집성지 | 영양 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연계1리 |
세거|집성지 | 영양 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덕암리 |
성씨 시조 | 김충 |
입향 시조 | 김경손 |
[정의]
김충(金忠)을 시조로 하고 김경손(金庚孫)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영양 김씨(英陽金氏)의 시조는 영의공(英毅公) 김충으로, 712년(신라 성덕왕 11) 10월 1일 중국 하남성(河南省) 여남(汝南)에서 출생하였으며 벼슬은 당 왕조에서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다.
755년에 안렴사(安廉使)로 일본에 갔다 돌아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죽도에 표류해 오게 되었다. 경덕왕이 이 소식을 당 천자(天子)에게 아뢰니,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았음으로 본인이 원하는 곳에 살도록 허락하여 김충(金忠)은 신라에서 살기로 결정하였다.
경덕왕은 그가 여남에서 왔다 하여 남(南)이라 사성(賜姓)하고 민(敏)이라 개명(改名)한 다음 영양현에서 살도록 하고 그 고을을 식읍(食邑)으로 하여 영의공(英毅公)에 봉하였다.
이로써 김충은 우리나라에서 남민으로 개명하여 영양 남씨 시조가 되었으며, 사성 뒤에 태어난 여러 아들들은 모두 남씨 성이 되었으나 맏아들로 사행길을 수행했던 복야(僕射) 김석중(金錫中)은 구성(舊姓)인 김씨를 따라 영양 김씨의 세계를 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중도에 세계가 불분명해졌다가 고려조에 첨의참리상호군(僉議參理上護軍)을 지낸 김충황(金忠晃)을 1세(世)로 하여 세계를 다시 이어오고 있으며, 영양 김씨 영천 입향조는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지낸 김경손(金庚孫)이다.
[입향 경위]
김경손(金庚孫)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경상북도 영천시 대수곡(大樹谷)[현 화산면 효정리]에 이거하였다가 화산면 연계1리(蓮溪1里)에 터를 잡았다.
[현황]
입향 이후 인물을 향지(鄕誌) 『화산지(花山誌)』를 통해 살펴보면, 충의(忠義) 편에 김진기(金震基), 김이기(金履基), 자선(慈善) 편에 김성익(金聖翊), 과환(科宦) 편에 김경손(金庚孫), 김처리(金處利), 김세견(金世堅), 김몽구(金夢龜), 김몽원(金夢黿), 김시흡(金時翕), 김상흠(金尙欽), 김상사(金尙思), 김상신(金尙信), 수직(壽職) 편에 김중담(金重燂), 김중현(金重炫), 김경기(金慶基), 김진성(金璡聲), 김재석(金在錫), 김병현(金秉鉉) 등이 있다.
영양 김씨는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四新里)와 예천군 용궁면 산택리,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와 의성군 안사면 쌍호 2리에 세거하며, 영천에는 화산면 연계 1리와 덕암리에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花山面) 연계리(蓮溪里)에 김몽구(金夢龜)의 화서정(華棲亭)과 김재석(金在錫)의 원관정(遠觀亭)이 있고, 덕암리(德岩里)에 김시흡(金時翕)의 수강정(守岡亭)과 김재영(金在濚)의 난포정(蘭圃亭), 김중담(金重燂)의 묘재인 추모재(追慕齋)가 있으며, 화산리(花山里)에 김경손(金庚孫)의 묘재인 영모재(永慕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