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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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景慕堂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우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경재 |
이전 시기/일시 | 1874년 - 경모당[청통면] 이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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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모당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우천리 |
원소재지 | 경모당 - 대구광역시 복현동 |
원소재지 | 곽준 묘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
성격 | 사당 |
양식 | 민도리|3량가|맞배기와집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현풍 곽씨 종중 |
관리자 | 곽영수[010-6686-2428] |
문화재 지정 번호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우천리에 있는 존재(存齋) 곽준(郭䞭)을 모신 사당.
[개설]
경모당은 조선 중기 문신인 곽준(郭䞭)[1551~1597]을 기리기 위해 곽씨 문중에서 건립한 사당으로, 곽준의 자는 양정(養靜), 호는 존재(存齋)이다. 대구 복현동에 있던 것을 1874년(고종 11) 청통면 우천리로 이건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존재 곽준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화산(花山)에 있다.
[위치]
경모당은 영천 시내에서 서문 오거리로 이동한 다음 의성·신녕 방면 28번 국도를 따라 5.7km가량 이동하면 삼부휴게실이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에서 좌회전한 다음 청통로를 따라 2km가량 들어가면 우천1리[소내마을] 마을회관이 자리한 마을초입에 다다르게 되는데 마을회관 맞은편 야산 자락에 있다.
[변천]
경모당의 명확한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건립 연대와 초기 건립 형태를 가늠할 수 없다. 초창은 대구광역시 복현동에 건립되었던 것을 1874년 어떤 연유에서인지 청통면 우천리로 이건하였다. 이건할 당시에는 가옥에 부설된 가묘 형태이던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존에 함께 이전된 가옥들은 없어지고 근래에 새로 지은 가옥과 사당이 남아 지금까지 전한다.
[형태]
경모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기와집 1동과 사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교적 낮은 산을 배경으로 사당 주위로는 돌과 시멘트를 섞어 만든 기와담장을 방형으로 둘러 일곽을 구성했는데 일곽 외부에는 존재 곽선생 부조전 유적비(存齋郭先生不祧典遺蹟碑)가 1기 좌측에 있다.
구조는 자연석 초석 위에 방형으로 가공한 기둥을 세우고 장혀와 도리를 차례로 올려 구성한 3량 가로 좌우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았으며, 장혀와 상인방 사이 공간에는 판벽으로 마감했다. 사당 내부는 따로 바닥 시설을 하지 않고, 통칸으로 구성하고 내부 벽에는 회벽 마감 처리하였다. 창호는 가운데 어칸에는 두짝 여닫이문을 좌우 협칸에는 외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현황]
경모당의 향사(享祀)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安義面)의 충렬사(忠烈祠)와 황암 서원(黃巖書院), 그리고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예연 서원(禮淵書院) 세 군데서 제향하고 있다. 매년 음력 8월 18일에 재를 지내는데 안의면에서 추모재를 먼저 지낸 후 현풍에 와서 재를 지내고 있다.
청통면 우천리의 경모당은 1980년대까지는 우모회와 더불어 해마다 제사를 모셨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관리 부실로 사당 지붕과 기둥·창호 등의 퇴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조사할 당시 지붕의 3/1과 벽채가 무너져 있는 상태였고 창호도 탈락되어 있어 사당으로서의 기능은 많이 퇴락되어 있는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경모당은 대구 복현동에서 이건할 당시 함께 옮겨왔던 신위가 현재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모셔져 있는 상태로 사당으로서의 본 기능인 향사의 기능은 사라지고 건물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의 경모당은 문중의 관리 부실로 퇴락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로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퇴락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