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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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紫泉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포은로 1643-69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우경원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이수명(李受明)의 묘하(墓下) 재실(齋室).
[개설]
자천재(紫泉齋)는 고려 말의 문관으로 감무 벼슬을 지냈으며 학문이 출중하였던 이찬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알려져 왔다. 재사 좌측에 있는 산이 문중산으로 이 산 중턱에 재단을 꾸미고 묘를 두었다. 『영양지(永陽誌)』에 자천재의 기록이 있는데 “재군북성곡기룡산하한림이수명묘향재숙지소(在郡北聖谷騎龍山下翰林李受明墓享齋宿之所)”라고 되어 있어 이찬이 아닌 이수명의 묘하 재실로 이미 사용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위치]
자천재는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의, 현재는 폐교된 자양초등학교 뒤편에 있다. 주 진입은 성곡리 마을 동쪽에서 우회도로를 따라 진입해야 한다.
[변천]
자천재는 증언에 따르면 1979년에 건립된 건물이다. 하지만 1935년에 간행된 『영양』에 “재군북성곡기룡산하한림이수명묘향재숙지소(在郡北聖谷騎龍山下翰林李受明墓享齋宿之所)”라는 자천재의 기록이 있어 조선 후기 또는 근대에 이수명의 묘하 재실로 사용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건립연대를 밝힐 수 있는 단서가 없지만 문헌에 비추어 볼 때 근대 이전에 창건되어 1979년에 한 차례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
자천재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대지에 재사를 배치하고 전면에 철재 대문을 달아 출입하게 했다. 출입구 좌측에는 관리사 건물이 있는데 블록담장을 둘러 재사와 영역을 구분시켜 놓았다.
재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가운데 둔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방 2칸, 우측에 1칸의 방을 드린 형식이다. 벽장 등의 평면적인 확장은 없고 전면과 좌측 면에 쪽마루를 설치하여 진입부 공간을 확장하였다. 대청 전면은 판벽에 문을 설치하여 폐쇄적 공간을 취했다.
정지한 대지에 자연석을 3단으로 쌓아 기단을 조성하였다. 계단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전면 기단 앞에 댓돌을 놓아 위로 오르게 했다. 기단 상면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넓적한 자연석을 놓았고 기둥은 모두 각주를 세웠는데 단면 크기가 170×170㎜로 규모에 비해 세장한 것을 사용하였다. 기둥부는 장혀 없이 납도리와 보로 결구되어 있다. 가구는 3량 구조로 대들보를 위에 동자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게 했다. 종도리 장혀 하부에는 상량 묵서가 기록되어 있다.
창호는 방의 경우 전면과 양 측면에 창을 내었는데 하부에 머름을 설치하고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다. 청방간 출입문은 아래 굽널을 끼운 외여닫이 굽널세살문을 달았다. 대청 전면에는 판벽 사이 아래 굽널을 끼운 쌍여닫이 굽널세살문을 달아 마루방을 이루게 하였다. 대청 뒷벽은 판벽을 설치하고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으로 수키와 끝을 와구토로 마감했다.
[현황]
자천재는 재사와 관리사가 블록담장으로 구분되어 배치되어 있다. 건물 주변 관리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재사는 목부재 상태는 양호하나 기와가 낡아 기와 열이 교란·이완되면서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 배면의 경우 훼손이 더 심해 목부재가 손상되고 처마가 아래로 처지면서 파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선영(先塋)은 재실 옆에 있으며, 묘제는 매년 음력 10월 첫째 일요일에 지낸다.
[의의와 평가]
자천재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묘하 재실로 운영되었던 것을 현대에 중건한 건물이다. 영천 지역의 일반적인 재실 평면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조상 숭배의 인식이 점차 사라져 가는 이 시대에 교감이 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