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7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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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追慕齋-古鏡面-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 |
집필자 | 우경원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에 있는 성이량(成以諒)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개설]
추모재는 조선 광해군 때의 학자로 성균관 진사를 지냈으며, 장현광과 친교를 맺으며 학문을 교류한 성이량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재사이다. 성이량은 1586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여정(汝貞), 호는 송암(松庵)이다. 진사를 지냈으나 과거를 접고 학문에 힘쓰니 세상의 칭송이 있었다. 묘소는 재사 뒷산에 있다.
[위치]
도암리 고속휴게소에서 호국로를 따라 500m 직진하면 좌측으로 용전리 마을로 들어가는 추곡길이 나온다. 추곡길을 따라 4㎞ 이동하면 용강 못이 나오는데, 못을 지나 700m 이동하면 추모재가 나온다.
[변천]
‘추모재중수기(追慕齋重修記)’ 현판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추모재의 ‘추모(追慕) 한다는 것은 조상의 유덕(遺德)을 사모하고 제사에 정성을 다하여 쇠퇴(衰退)하지 않도록 하는 효도의 뜻’이 담겨 있다.
추모재는 대청마루와 방, 포사(庖舍)까지 모두 13칸이다. 창건은 1701년(숙종 27)에 이뤄졌고, 그 뒤 1815년(순조 15)에 보수하였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비바람과 새, 쥐 때문에 건물이 손상되어 형편없이 무너지고 떨어져 그때마다 보수하였으나 결함이 생겨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문중의 논의로 1996년 봄에 새롭게 중수하였다. 묘소는 고경면 추곡리 용강 언덕에 있다.
[형태]
추모재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에 가까운 평탄한 대지에 재사·동재·서재·부속사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고 일곽은 벽돌담장을 둘렀다. 담장 전면 우측 모서리에 4주문을 세워 출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재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실의 배열은 가운데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씩을 방을 드리고 전면 방 앞에만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재사는 여러 채의 건물 중 가장 중심 건물로 기단을 동재, 서재보다 높게 축조하였다.
자연석 3단 정도의 높이로 쌓고 전면 기단 가운데 일부를 파서 3단의 계단을 만들었다. 초석은 넓적한 자방형의 자연석들을 골라 썼다. 기둥은 전면 가운데만 원주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각주를 세웠다. 단면 크기가 200×200m로 규모에 어울리는 튼실한 것을 썼으며 민흘림을 각각 두었다.
창호는 방의 경우 정면에만 세살여닫이 창을 설치하였고, 청방간에는 아래 굽널을 끼운 외여닫이문을 달았다. 대청 전면은 개방되어 있고 뒷변은 판벽으로 꾸미고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기둥 위에는 대청 전면에만 창방과 처마도리 장혀 사이에 소로를 끼워 장식하였다.
가구는 3량 구조로 자연 곡재의 대들보 위에 키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게 한 형식이다. 구조적 보강을 위하여 대청칸의 두 방 사이에는 보 아래 창방형식의 가로부재를 하나 더 끼웠다. 처마는 서까래만 쓴 홑처마에 맞배지붕 형식으로 양 측면에는 풍판을 달아 막음하였다.
[현황]
추모재는 넓고 평탄한 대지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 건물은 없고 전(田)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일곽은 검은색을 띄는 벽돌로 담장을 둘렀고 재사 뒤쪽으로는 산죽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내부에는 건물들이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가운데 중정형의 마당을 조성하였다. 마당에는 벽돌을 깔았다. 건물의 보존 및 관리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으로 묘제는 매년 음력 3월 초에 이뤄진다.
[의의와 평가]
추모재는 영천 지역의 재사 건축 중 재사와 동재, 서재 및 부속사를 갖춘 비교적 큰 규모의 재사이다. 문중서원의 배치형식을 취하고 있는 재사로 교육의 장소로 기능이 있어 보인다.
재실은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핵가족화, 농촌인구의 노령화 등으로 동족 관념이 희박해지면서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으나,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상 숭배 등 효(孝)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교육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