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968
한자 榮州布敎堂
영어공식명칭 Yeongju Buddhist Center
이칭/별칭 홍법사,선교 양종 대본산 김용사 말사 연합 영주포교당(禪敎兩宗大本山金龍寺本末寺聯合榮州布敎堂)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중앙로63번길 41-10[영주동 411-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70년 - 영주포교당 중창
최초 건립지 영주포교당 - 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
현 소재지 영주포교당 - 경상북도 영주시 중앙로63번길 41-10[영주동 411-2]지도보기
성격 사찰
전화 054-632-3767
홈페이지 영주포교당(http://cafe.daum.net/yjpkd)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개설]

영주포교당(榮州布敎堂)은 ‘홍법사(弘法寺)’라고도 불린다. 영주포교당은 현재 영주 지역 불교의 종합교육장으로, 지역 사찰의 구심 역할은 물론, 생활 불교와 대중 불교의 활성화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영주포교당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영주 지역 포교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영주포교당구성공원 바로 우측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향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향서당은 1371년(공민왕 20) 영천군수로 부임한 하륜(河崙)이 처음 세웠다고 하는데, 영주 지역의 향촌 교화 기구로 운영되었다. 갑오개혁 이후 향청 제도가 폐지되면서 향서당 건물이 불가 소유가 되었다. 1900년경 영주포교당은 당시 대본사였던 문경 김용사(金龍寺) 직할 포교당으로 건립되었는데, 향서당 건물을 뜯어 지어졌다고 한다. 이 무렵 영주포교당하망동에 있었으며, 1940년 이후 현재 위치인 영주동로 옮겨졌다.

1911년에 대웅전을 중건하고, 1970년대에 중창을 하였다. 1983년과 2001년에는 요사를 건립하였다. 2007년에 대웅전 삼존불상을 개금하고, 주련과 대웅전 현판도 새로 하였으며, 2008년에는 대웅전 법당 안 우측에 지장보살상을 봉안하였다. 2009년에는 대웅전을 단청하고 기단도 새롭게 단장하였다.

[활동 사항]

영주포교당은 불자들의 법회 활동, 지역봉사, 불교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월 초하루·보름 지장재일 법회,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오전 법회, 매월 음력 18일에 지장재일 법회, 매월 첫째 주 토요일 다라니경 철야 정진 기도 등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주포교당 신도회, 거사림회, 연꽃회 등 불자 모임이 영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식당 봉사활동 등 지역 사회를 위한 자선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또 불자들의 불교 지식 함양을 위한 금강불교대학과 대학원[심화 과정]을 설치하여 매주 2시간씩 1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영주포교당은 도심의 주택 밀집 지역에 있어서 산중사찰과 달리 규모가 크지 않다. 영주포교당의 건물은 유일한 주불전인 대웅전과 요사 2채가 전부이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벽면에는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한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다. 콘크리트로 기단이 되어 있으며, 기단 위에 연꽃무늬를 투박하게 다듬은 주춧돌이 놓여 있고, 그 위에 기둥이 세워져 있다. 처마는 겹처마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단청이 곱게 되어 있다. 대웅전 안 불단에는 닫집을 달고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좌우에 협시로 봉안하고 있다. 삼존불 뒤로는 후불탱화가 걸려 있으며, 신장·지장·칠성탱화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입구 쪽 2층 요사는 정면 5칸, 측면 1칸 맞배지붕 구조로 1층은 종무소, 2층은 금강불교대학으로 사용하고 있다.

[관련 문화재]

영주포교당 대웅전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있다. 석탑과 석등은 모두 영주 지역 관내에 흩어져 있는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 부재들을 수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규격에 맞지 않는다. 이 중 석탑 2기는 서로 다른 석탑 부재를 쌓아 만든 것으로 위치나 방향과 관계없이 그저 쌓아만 놓은 상태이다. 탑신석 문비(門扉)에는 문을 달았던 구멍 흔적과 인물상이 남아있다. 석등도 3기가 있는데, 4면에 빛이 나오는 창을 내고 나머지 4면에는 인물상을 조각한 것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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