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982 |
---|---|
한자 | 榮州伊山書院 |
영어공식명칭 | Isan Confucian Academy, Yeongju |
이칭/별칭 | 이산서원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768-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558년 - 영주 이산서원 창건 |
---|---|
건립 시기/일시 | 1573년 - 영주 이산서원 이황 제향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574년 - 영주 이산서원 사액 |
이전 시기/일시 | 1614년 - 영주 이산서원 영주시 휴천동에서 영주시 이산면 내림리로 이건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1년 - 영주 이산서원 훼철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36년 - 영주 이산서원 경지당 복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5년 - 영주 이산서원 경지당 보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3월 11일 - 영주 이산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166호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18년 - 영주 이산서원 영주댐 수몰로 영주시 이산면 내림리에서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로 이건, 복설 중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주 이산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주 이산서원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768-2 |
원소재지 | 영주 이산서원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내림로 106-43[내림리 25] |
성격 | 서원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경지당] |
정면 칸수 | 4칸[경지당] |
측면 칸수 | 2칸[경지당] |
소유자 | 영주시 |
관리자 | 영주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기념물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서원.
[개설]
영주 이산서원(伊山書院)은 1558년(명종 13) 건립된 서원으로 이황(李滉)을 제향하고 있다. 이산서원은 옛 영천군(榮川郡) 지역에서 처음 건립된 서원이자, 유일한 사액서원(賜額書院)이었다.
[위치]
영주 이산서원은 이산면보건지소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내성천이 흐르고 있다. 이전하기 전에 영주 이산서원은 영주시 이산면 내림리에 있었는데, 지금 영주 이산서원에서 내성천을 따라 남쪽으로 4㎞가량 떨어진 지점이며, 동쪽으로 내성천을 바라보는 곳이다.
[변천]
이황이 찬한 이산서원의 기문에 따르면, 옛 영천군 지역에는 16세기부터 거접(居接)이라 불리는 관청 후원의 교육 형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1558년 군수 안상(安瑺)이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지역 사림들과 함께 번현(樊峴)[지금 영주시 휴천동]에 32칸의 학사를 지었는데, 이것이 영주 이산서원의 출발점이 된다. 이때 안상은 유생 장수희(張壽禧)를 이황에게 보내어, 학사의 명칭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기문을 부탁하였다. 1559년(명종 14) 이황은 지명에 따라 ‘이산(伊山)’이라는 서원명과 함께 경지당(敬止堂)·성정재(誠正齋)·진수재(進修齋)·지도문(志道門)·관물대(觀物臺) 등 사당 및 강당의 모든 이름과 기문 및 원규(院規)를 지어 주었다.
이황이 세상을 떠나고 2년 뒤인 1572년(선조 5) 사당을 지었으며, 1573년 이황을 제향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서원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574년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614년(광해 6) 번천의 터가 습하여 임구(林丘)[지금 영주시 이산면 내림리]로 이건하였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따라 철폐되었다. 1936년 강당인 경지당만을 복원하였으며, 1995년 해체 보수작업을 진행하였다. 영주댐 건설로 영주 이산서원이 수몰 지역에 들어가,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로 이건하였다.
[형태]
영주 이산서원은 1936년 복설 된 경지당의 경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납도리를 사용하였으며, 중앙 2칸은 마루를 깔고, 양 끝 협간에 1칸 너비의 방을 두었다.
[현황]
영주 이산서원은 2010년 3월 1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66호로 지정[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어 보호 및 관리되고 있다. 영주댐 건설로 수몰 지역에 있던 영주 이산서원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로 이전하고, 동·서재와 사당, 누각, 경지당 등 8개 동을 복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주 이산서원은 옛 영천군 지역에서 처음 건립된 서원이자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조선시대 동안 박승임(朴承任)·김륵(金玏)·권두문(權斗文)·김중청(金中淸) 등 옛 영천군 지역의 저명한 학자들이 활동하였다. 또한 이산서원에서는 조선시대 동안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비롯해 이황의 상소문인 「무진봉사(戊辰封事)」, 박승임의 문집인 『소고집(嘯皐集)』 등이 간행되었다. 이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성학십도』이다. 『성학십도』는 1572년 황해도관찰사 박승임이 「무진봉사」와 함께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고자, 영천군수 허충길(許忠吉)에게 경비를 보내 이산서원에서 간행하였다. 현재 『성학십도』 목판은 ‘소수박물관 소장 『성학십도』 판목’이라는 명칭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7호로 지정되어 소수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한편, 영주 이산서원은 한국 서원 역사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이황이 이산서원 운영과 관련해 원규를 제정했기 때문이다. 이산서원 원규는 『퇴계집(退溪集)』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후 영남지방 서원의 기본 운영 규정으로 많이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