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809
한자 張基永
영어공식명칭 Jang Kiyoung
이칭/별칭 석정(石正)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엄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3년 9월 12일연표보기 - 장기영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4년 - 장기영 일본 주오대학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30년 - 장기영 미국 버틀러대학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장기영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3년 - 장기영 미국방성 전략국 입대
활동 시기/일시 1948년 - 장기영 제헌국회의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장기영 체신부 장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6년 - 장기영 아시아반공대회 한국 대표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7년 - 장기영 대한중석광업주식회사 사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장기영 서울시장 취임
몰년 시기/일시 1981년 5월 17일연표보기 - 장기영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장기영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장기영 건국포장 수훈
출생지 영흥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주오대학 - 일본 도쿄시
학교|수학지 버틀러대학 -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시
학교|수학지 애리조나주립대학 - 미국 애리조나주
활동지 자유시 - 러시아 아무르주 스보보드니
활동지 미국 - 미국
활동지 중국 - 중국
묘소 용인공원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새래로 158-33[조부리 산69-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체신부 장관|서울특별시장

[정의]

일제강점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정부 관료.

[개설]

장기영(張基永)[1903~1981]은 강원도 영월군 출신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였으며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의원을 지냈다. 호는 석정(石正)이다.

[활동 사항]

장기영은 강원도 영월군 출신으로 호는 석정(石正)이다. 장기영영월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춘천농업학교와 서울 중동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러시아로 이동하여 자유시에서 무장독립부대 통합을 위하여 조직된 한인군사위원회인 전한군사위원회(全韓軍事委員會)의 위원으로 활약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장기영은 일본에서 공부하면서도 조국의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일본 도쿄[東京]에서 공부하고 있던 강원도 출신 학생들을 모아 금강구락부를 조직하고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금강구락부 학생들은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귀국하여서는 민중을 깨우치기 위하여 일본 헌병경찰들의 눈을 피하여 계몽사업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24년 일본 주오대학을 졸업한 장기영은 1924년 상해임시정부에서 안창호와 김구의 권유를 받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장기영은 미국에서 1930년 버틀러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이어 인디애나주립대학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며 학업을 계속하던중 이승만을 만나 친분을 맺게되었다. 1932년 이승만이 국제연맹에 대한 외교관계 일로 유럽으로 가게 되자 1932년 겨울 이승만이 장기영을 불러 워싱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주차한국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하고 구미위원부의 일을 맡겼다. 장기영은 구미위원부를 통하여 일제의 야만적인 학정을 폭로하고 미국 시민들을 상대로 한국 문제의 여론을 환기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일선전포고문을 발표하고 한국광복군이 연합군과 공동 작전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이때 장기영은 한국광복군의 일원으로 50여 명과 함께 미군 전략정보처인 OSS의 유격훈련에 참여하였다. 한국광복군은 유격전에 필요한 특수 훈련을 받고, 국내에 침투하여 무장투쟁 거점을 확보하고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국내 정진군이 투입되기도 전에 일제가 항복하여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광복 후 귀국한 장기영은 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되면서 설립된 제헌국회의원에 고향인 영월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이어 1949~1952년까지는 체신부장관을 지내며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통신망 정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1956~1960년까지는 아시아반공대회 한국대표로 동남아 각국을 순방하며 국위를 선양하였고, 이 시기에 대한중석광업주식회사 사장[1957~1960년]과 서울특별시장[1960년]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 후 3공화국과 4공화국에서 정당활동을 하며 평소에 생각하였던 육영사업에 착수하여 강원도 영월에 석정학원을 설립하고 여성 교육에 헌신하였다.

[저술 및 작품]

장기영의 저술로는 『우익 정당의 단합론』, 『우익 정당의 갈 길』 등이 있다.

[묘소]

장기영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조부리 산69-1 용인공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장기영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