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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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命恒肖像-揚武功臣敎書 |
영어음역 | O Myeonghang Yeongjeong Byeong Hambu Yangmu Gongsin Gyoseo |
영어의미역 | Royal Certificate of Meritorious Subject for O Myeonghang and His Portrait and Ca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구성면 마북리 24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은선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3년 11월 5일 - 오명항 초상 및 양무공신교서 보물 제117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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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오명항 초상 및 양무공신교서 보물 재지정 |
성격 | 초상화 |
제작시기/일시 | 1727년경 |
서체/기법 | 비단|닥종이|나무 |
소장처 | 해주오씨 문중 |
소장처 주소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85[상갈로 6] |
소유자 | 해주오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항의 초상화와 양무공신 교서.
[개설]
‘오명항 초상 및 양무공신교서(吳命恒影幀幷函附揚武功臣敎書)’는 오명항 초상화 한 점과 일등공신으로 책록하는 교서 한 부 그리고 그것들을 담았던 나무로 만든 함 등 총 세 점의 유물을 말한다.
오명항 초상화는 1979년 9월에 해주오씨 문중에서 「오명항 양무공신 교서」와 함께 발견되었다. 현재 전해 오는 오명항 초상화는 모두 네 점으로 분무공신으로 책록되었을 때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두 점은 전신본이고, 두 점은 반신상이다.
「오명항 양무공신 교서」는 1727년(영조 37)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일등공신으로 봉해지면서 내려진 문서이다. 오명항의 초상화 네 점과 「오명항 양무공신 교서」는 현재 경기도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1993년 11월 5일 보물 제117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오명항 초상화는 전신상으로 얼굴은 좌안 팔분면, 전신은 구분면의 형태를 띠고 있다. 머리에는 검은색 사모를 쓰고, 짙은 청록색의 단령을 입고, 두 손을 허리 아래에서 모아 공수 자세를 취한 전형적인 공신도의 형식이다. 가슴에는 쌍학 흉배를 달고 허리에는 서대(犀帶)를 매었는데, 사모는 영조 연간 초기의 모제를 반영하여 매우 높은 편이며, 의자에는 호랑이 가죽을 깔았다. 족좌대 위의 발은 팔(八)자로 벌렸다.
안면 처리에서도 갈색의 얼굴에 외곽선 및 이목구비는 짙은 적갈색으로 표현하였고, 안면의 오목한 부분은 적색으로 선염 처리하였다. 얼굴에 있는 종두 자국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코 밑의 점과 왼쪽 귀에서 턱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점들도 잘 표출하였다. 실제적인 얼굴 표현과 강직한 오명항의 성격을 잘 포착한 작품이다.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 “수충갈성결기효력양 분무공신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겸령 경연사감춘추관사해은부원군 증시충효공오공화상(輸忠竭誠決幾效力揚 奮武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兼領 經筵事監春秋館事海恩府院君 贈諡忠孝公吳公畵像)”이라는 화기(畵記)가 적혀 있어 분무공신 책정 때에 받은 공신도임을 드러내고 있다.
「오명항 양무공신 교서」는 닥나무로 만든 바탕에 비단을 배접하여 만들었다. 테두리에는 감색 천을 위와 아래에 2㎝ 폭으로 덧붙이고, 다시 붉은색 선으로 사각의 테두리를 두른 다음 세로로 63개의 선을 그어 그 안쪽에 검은색으로 내용을 적었다.
1727년에 이인좌(李麟佐)·정희량(鄭希亮) 등이 서로 역모하여 난을 일으켜 전주 등이 함락되자, 오명항·박찬신(朴讚新)·박문수(朴文秀) 등이 출정하여 안성과 죽산 등지에서 전승을 거두니 그해 4월에 일등 한 명, 이등 일곱 명, 삼등 일곱 명 등, 총 열다섯 명에게 공신을 책훈한다는 내용이다. 그 이하에는 열다섯 명의 이름이 들어 있고, 교서의 좌우에 나무로 축을 부착하여 말아 두게 하였다. 뒷면에는 신치근이 만들고 조명교가 글을 썼다는 명문이 있다.
[특징]
오명항 초상화는 18세기 전반 공신 교서를 내릴 때 그려지던 공신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는 같은 시대 분무공신상인 조문명(趙文命)·권희학(權喜學)·김중만(金重萬)의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의 하나이다.
안면의 세밀한 묘사와 복식·흉배의 섬세한 묘사 등은 18세기를 대표하는 초상화의 면면을 보인다. 특히 사모의 모체가 매우 높고, 양각이 좌우로 곧게 뼏쳐 있으며, 단령의 깃이 전대보다 깊게 패어 있어 조선 후기 상복의 변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오명항 초상화는 섬세한 필치와 대상의 특징을 잘 포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솜씨 좋은 화원이 그린 작품으로 추정된다. 특히 「오명항 양무공신 교서」와 같이 일괄로 남아 있어, 당시에 「오명항 양무공신 교서」와 함께 초상화가 제작되었던 사례를 증명해 주는 주요한 자료의 하나이다. 아울러 19세기의 특징은 드러나지 않고 17세기의 초상화 특징에서 보이지 않는 또다른 면이 드러나 있어 18세기 전반의 초상화 경향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