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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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重老靖社功臣敎書-肖像-李重老肖像 |
영어음역 | Lee Jungro Chosang |
영어의미역 | Potrait of Lee Jungro |
이칭/별칭 | 이중로 초상화,이중로 초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85[상갈로 6]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은선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5월 7일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초상 보물 제1174-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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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초상 보물 재지정 |
성격 | 초상화 |
제작시기/일시 | 조선 중기 |
소장처 | 경기도박물관 |
소장처 주소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85[상갈로 6] |
소유자 | 경기도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무신 이중로의 초상화.
[개설]
이중로 초상의 경우 1993년 11월 5일 문화재청에 공식 등록된 명칭은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영정(보물 제1174호)이었으나 2004년 5월 7일에 두 유물이 별도로 분리되어 이중로 정사공신교서(보물 제1174-1호)와 이중로 초상(보물 제1174-2호)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두 유물 모두 2000년 청해이씨 세마공파 종중에서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중로 초상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오사모에 단령을 착용하였으며, 17세기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정장 관복본의 전신 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 공신상이다. 표제나 명문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 2등에 책록된 뒤에 받은 이중로 정사공신교서에 초상화를 그려 후세에 길이 남기라는 내용이 들어 있어 1625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안면과 상반신은 좌안 7분면인데 하반신은 거의 9분면이다. 접이식 의자의 측면과 단령 삼각 형태의 무가 두드러지며, 아청색 안감과 녹색 중의가 엿보여 17세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오사모는 낮은 편인데, 양 각은 넓고 둥근 형태로 17세기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단령은 짙은 색이며 가슴에는 커다란 해치 흉배를 달았고, 종2품이 착용하는 학정금대(鶴頂金帶)를 매었다. 따라서 이중로 초상이 그려진 시기는 이중로가 종2품 무관이었을 당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해치는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판단하는 서수(瑞獸)로, 뿔이 하나 달려 있고 머리와 꼬리에 풍성한 갈기가 있으며, 목 아래로 비늘이 있다. 이러한 해치 흉배를 보이는 무신상의 초상화는 매우 드물다. 이중로가 인조반정 참여 이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단서이다.
두 손은 공수를 하여 배 부분까지 올려 대수포의 끝자락이 하반신을 덮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18세기의 형식과는 다르다. 의자 위의 호피는 보이지 않는다. 족좌대는 낮으며, 발은 거의 단령포에 덮여 앞코 부분만 약간 드러나 있다. 바닥은 하단 3분의 1이 모두 화려한 채전을 배경으로 삼았다. 오른쪽으로 튼 자세와 전체적인 구도, 배경과의 공간 배치 등이 비례하고 있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징]
섬세한 붓 터치가 돋보이며 특히 무신 공신상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면 묘사는 섬세하지만 신체 표현은 대담하게 처리하였다. 우선 안면과 이목구비는 가는 선으로 윤곽을 잡고, 코와 양볼 같은 두드러진 부위는 홍기(紅氣)로 엷게 선염하는 역명암법을 사용하였다.
눈가 주름 등은 얇게 선을 처리했으며, 수염과 눈썹 표현은 정교하면서도 유연하다.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단호한 표정을 잘 포착하였고, 준수한 인물 묘사가 인상적이다.
오른쪽으로 튼 자세 때문에 오른쪽 어깨는 낮고 작게, 왼쪽 어깨는 보다 높고 크게 그려 원근감을 표현하였다. 옷주름은 선염 없이 굵은 선으로만 묘사하였으나 돌출된 양손과 두 다리 사이가 오목하게 들어간 요철법이 자연스럽다.
양 어깨의 큰 옷깃이 18세기의 것과는 다르게 직각을 이루고 있으며, 단령의 둥근 깃이 매우 낮게 패여 있어 당시의 시대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신체 표현 중 특히 가슴에 그려진 해치 흉배는 무관 풍헌관(風憲官)에게 내려지는 흉배로 주위에는 모란문과 구름 등을 묘사하였다. 바닥에 깔린 채전은 점묘법으로 정성 들여 표현하여 돌출된 질감을 표현하였으며 톤도 안정적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를 대표할 만한 우수한 작품이다. 특히 무신상으로서 공신상을 남긴 몇 개 안 되는 예의 초상화로 해치 흉배가 부착되어 복식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아울러 이중로 정사공신교서도 함께 유존하여 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