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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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選肖像 |
영어음역 | Heo Seon Chosang |
영어의미역 | Portrait of Heo Seon |
이칭/별칭 | 허선 초상화,허선 영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436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은선 |
성격 | 인물화|초상화|일반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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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일시 | 조선 중기 |
서체/기법 | 견본설채 |
소장처 | 양천허씨 문중 |
소장처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436 |
소유자 | 양천허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용인시 향토유적 제24호 |
문화재 지정일 | 1992년 10월 12일 |
[정의]
경기도 용인시의 양천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허선의 초상화.
[개설]
허선 초상은 허선(許選)[1591~1665]이 부친인 허계(許契)[1561~?]와 함께 1628년(인조 6)에 일어난 유효립(柳孝立)의 모반 때 공을 세워 ‘갈충효성병기익명영사공신(竭忠效誠炳幾翊命寧社功臣)’이 된 이후 제작되어 공신각(功臣閣)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전한다.
양천허씨 문중에서 전하는 『양천허씨유사(陽川許氏遺事)』에 따르면, 1628년에 광해군의 외척이 되는 유효립이 제천에서 모의하여 역모를 꾀하자 죽산부사로 있던 허적이 역모를 알아차려 조정에 고변하였고, 이에 아우인 허계가 아들인 허선과 함께 음모자를 절박하는 공을 세웠다고 한다.
허계 초상과 함께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능안마을의 양천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1992년 10월 12일에 용인시 향토유적 제24호로 일괄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허계 초상과 허선 초상은 모두 인조대 전반기의 초상화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부자의 초상화가 함께 남아 있는 귀중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형태 및 구성]
허선 초상은 허계 초상에 비하여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만 후대에 부분적으로 이모한 흔적이 엿보인다. 초상화는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의 공신도상으로 아버지 허계 초상과 동일한 구성과 형태, 유사한 양식을 지니고 있다. 다만 얼굴 표현에서 허계는 초상화 당시 67세로 추정되는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고, 허선은 37세의 젊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은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이며 전신은 팔분상(八分像)이다. 두 손은 허리 부근에서 공수하였다. 오사모를 쓰고 있으며, 짙은 청록색의 단령포를 입었다. 오사모는 모정이 낮고 양 각은 둥글고 넓으나 양각에 짙은 문양이 그려져 가채(加採)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가슴에는 허계와 같은 품계의 백한흉배(白鷳胸背)를 달고 있으며, 허리에는 삽금대(鈒金帶)를 둘렀다. 오른쪽 어깨는 직선형으로 약간 기울이고 왼쪽 어깨는 그보다 경사를 올려 원근감을 표현하였다. 포의 트임 사이로 삼각 형태의 무가 뾰족하게 올라가 있다.
얼굴 표현은 세선으로 얇은 선을 반복하여 음양을 나타냈고, 양 뺨과 코에는 붉은 색의 선염을 넣었다. 허계 초상에 비해 얼굴선과 옷주름을 표현한 먹선이 다소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바닥에는 조선 중기에 유행하던 화려한 채전을 넓게 깔았는데, 문양의 구성과 크기·위치가 허계 초상과 같은 형태를 보이고 있다. 허계 초상과는 달리 화제(畵題)는 없다.
[특징]
허선 초상은 부친인 허계 초상과 함께 조선 중기 초상화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으나 일부 가채(加採)와 보수가 가해진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원형의 형태가 잔존하여 한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공신도상의 전형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허선 초상은 원형이 완전하게 남아 있지는 않지만 허계 초상과 함께 영사공신의 공신도상으로 그려진 의미깊은 초상화이다. 다만 좀더 세밀한 조사와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그 선후 관계와 이모(移模), 가채(加採)의 정도 등을 밝혀내었으면 한다. 아울러 같은 시기, 같은 공신의 반열에 오른 장수황씨 집안의 공신도상과 비교하면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