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18
한자 朴奫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야룡리 7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7년 1월 17일연표보기 - 박윤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박윤화 주렴산 독립만세운동
몰년 시기/일시 1940년 8월 23일연표보기 - 박윤화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박윤화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야룡리 73 지도보기
활동지 주렴산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주렴산 독립만세운동 주도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윤화(朴奫和)[1867~1940]는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1919년 3월 17일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박윤화는 1919년 3월 17일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한 인물이다. 박윤화이철규(李哲圭)[1892~1965]·이철원(李哲源) 등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여 주렴산에 올라가 국사봉을 비롯한 3개소에 태극기를 꽂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징을 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렴산 독립만세운동주산면 증산리 출신인 이철원이 배재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의 만세운동을 알리기 위하여 고향에 내려왔다가 동지들을 모아 고향의 만세운동을 역설하였다. 박윤화·이철규·이철원 등은 4월 16일에 만세 운동을 꾀하였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결국 다음날인 4월 17일에 주렴산에 올라가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박윤화 등이 참여한 만세 운동은 마을 사람들이 만세 소리를 듣고 산으로 올라가 합세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웅천면 시내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주모자 18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다음날 4월 18일 밤에는 주산면 야룡리 복개봉에서 만세를 부르기로 약속하였으나 진행하지 못하게 되자 박윤화는 홀로 복개봉에 올라가 태극기를 꽂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된 박윤화보령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충청남도 보령시에서는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1997년 5월 주렴산기미독립만세운동 선양사업추진위원회를 지원하여 기념비를 주렴산 국수봉에 세웠다. 또한 위원회에서는 매년 4월 16일에 주민들과 함께 ‘주렴산 3·1만세운동’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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