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72
한자 黃奭顯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구룡1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 3월 1일연표보기 - 황석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0~1930년대 - 황석현, 중국 독립운동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45년 5월 9일연표보기 - 황석현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9년연표보기 - 황석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충청도 남포현 웅천면 화망리
활동지 만주 일대
묘소 황석현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구룡1리 화망마을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중국 독립운동 활동

[정의]

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황석현(黃奭顯)[1886~1945]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 만주 지역 일대에서 활동한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황석현은 1886년 3월 1일에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황온(黃穩)[1860~1938], 어머니는 청주 양씨(淸州楊氏) 양한기(楊漢基)의 딸이다. 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후 아들이 없던 재종숙(再從叔)[아버지의 육촌 형제] 황진(黃稹)[1861~?]의 양아들로 들어갔다.

[활동 사항]

황석현의 독립운동은 1924년부터 확인된다. 황석현은 1924년 보령군 진흥회(振興會)의 부회장을 시작으로, 남포소작회(藍浦小作會) 상무위원이 되는 등 여러 사회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중국의 지린성[吉林省]에 정착하였으며, 정착 후 여러 방면의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1920년대 후반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인 독립운동가들은 1928년 12월에 조선공산당이 해체되면서 대부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황석현 역시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滿洲省委員會) 하동남향(河東南鄕) 지부 책임자 한봉윤(韓鳳允)의 권유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게 되었다. 황석현이 담당하였던 일은 주하현위원회(珠河縣委員會) 하동남향에서 주로 문서를 책임지고, 각종 선전문을 비롯하여 기밀문서를 수발하고 관련된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황석현은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다가 1934년 4월 말 전동철(田東哲)과 함께 하얼빈[哈爾濱] 일본영사관 경찰에게 검거되었다. 결국 황석현은 3년간 재류금지처분(在留禁止處分)을 받았고, 5월 14일에는 신의주경찰서로 이첩되어 취조를 받았다.

황석현과 함께 체포된 전동철은 5월 4일 바로 석방되었으나, 황석현은 5월 14일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어 6월 4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황석현은 1934년 옥고를 겪은 이후 출옥하여 고향인 충청남도 보령으로 돌아와 생활하였다. 그러나 1945년 2월 14일에 불경죄(不敬罪) 및 「조선임시보안령(朝鮮臨時保安令)」 위반으로 대전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황석현은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자세하게 어떠한 사건으로 어떠한 형량을 받았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죄명으로 판단할 때 일본과 관련되어 항일을 포함한 행동을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황석현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45년 5월 9일 오전 8시 20분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묘소]

황석현의 묘소는 할아버지 황효원(黃孝源)의 묘소 아래인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구룡1리 화망마을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사상월보』 제4권 5호(조선총독부검사국, 1934)
  • 『독립유공자공훈록』 25권(국가보훈처, 2020)
  • 독립운동관련판결문(https://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1751&indpnId=00000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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