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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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道少年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소년 단체.
[개설]
1919년 조직된 안변 소년회와 왜관 소년회는 동화 읽기나 학습을 목적으로 한 최초의 소년 운동 단체였다. 1920년 조직된 진주 소년회는 20세 이하의 학생들로,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만세 운동을 계획하여 소년 운동계에 큰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면서 전국 각처에서 소년 운동 단체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소파 방정환이 조직한 천도교 소년회가 1922년 봄에 제정한 어린이 날, 1922년 10월 5일 중앙 고등 보통 학교 교사 조철호 등이 조직한 조선 소년군, 중앙 기독 청년회 간부 정성채가 조직한 소년 척후대 등은 소년 운동계의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청도 지역에도 소년 운동 단체가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청도 소년회는 1926년 1월 14일에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위원을 선출하고 강령을 채택하였는데, 1924년경에 조직된 청도 광성단(淸道 光成團)을 혁신하여 명칭을 소년회로 바꾸었다.
[변천]
청도 소년회는 1926년 1월에 의우단(義友團)의 지원 하에 조국 광복을 위한 소년들의 해방과 정신적 육체적 발전을 목표로 조직되었다. 1924년경에 조직된 청도 광성단을 혁신하고, 단의 명칭을 소년회로 바꾼 것이다.
청도 소년회는 1926년 1월 14일에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위원을 선출하고 강령을 채택하였다. 강령으로 ‘소년의 해방을 기함’, ‘소년의 지적 향상과 체적(體的) 훈련을 기함’ 등을 채택하였다. 집행 위원장에 김종규(金鍾珪), 집행 위원에 김덕봉(金德奉)·윤명출(尹明出)·이차길(李且吉)·이광길(李光吉)·박소수(朴小守)·김복암(金福岩) 등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청도 소년회는 설립된 지 한 달이 못되어 청도 경찰서의 명령으로 해산되고 말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청도 소년회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청도 보통 학교의 교장으로 있던 모리 교장이 1926년 2월에 청도 소년회에 가입한 학생들에게 탈퇴를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 의우단과 청도 소년회에서 그 진상을 조사하였다. 모리 교장은 “소년 해방 운동과 같은 것은 부모에 대한 반대 충돌의 원인이 된다.”라는 이유에서 탈퇴를 강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