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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연 옥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521
한자 沈鼎衍獄事
영어의미역 Administration of the Major Criminal Cases Such as Murder and High Treason of Sim Jeong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권(試券) 사건
발생(시작)연도/일시 1755년(영조 31)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755년(영조 31)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창덕궁[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2-71]
관련인물/단체 신치운|심악|윤혜|강몽협|유명두|김도성|김인제|박사집|이거원|유수원

[정의]

1755년(영조 31) 충주 출신 유수원이 과거시험 답안지에 조정을 비방하는 글을 써낸 심정연의 일당으로 몰려 충주목이 충원현으로 강등된 사건.

[역사적 배경]

경종 즉위 후 노론과 소론의 분쟁은 연잉군(훗날 영조)의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 문제로 마찰을 빚으면서 상대를 역적으로 간주하는 시비론으로 전화되어 갔다. 이 와중에 경종이 급서하고 영조가 즉위하자 소론의 일부 급진 세력은 영조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소론의 불만은 이인좌의 난으로 표출되었는데, 이인좌의 난이 진압된 뒤 또다시 표출된 것이 나주에서 발생한 괘서사건이었다. 나주괘서사건의 실체는 불분명하지만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소론 급진 세력(준소)의 역모로 귀결되었다.

[경과]

1755년 5월 나주괘서사건을 수습하고 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치러진 토역정시에서 준소 계열인 심정연은 준소 세력이 정당하다는 것과 나주괘서사건을 비롯한 영조의 준소 세력에 대한 처우의 부당함을 알리는 내용을 글을 써서 답안지 대신 제출하였다. 심정연이 제출한 답안지의 내용이 매우 불순하다고 판단한 영조는 병조판서 홍상한과 삼군문대장에게 명하여 심정연을 잡아들이고 이튿날 친히 국문하였다.

[결과]

국문 결과 심정연이인좌의 난 이후 불만을 품고 있다가 윤취상·김일경 등 준소세력의 자손들과 함께 모의하여 역모를 꾀한 것으로 종결되었다. 이 사건으로 심정연과 글에 대해 함께 논의한 신치운을 비롯하여 심악·윤혜·강몽협·유명두·김도성·김인제·박사집·이거원·유수원 등이 처형됨으로써 소론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아울러 유수원이 충주 태생이라는 이유로 1755년 6월 충주목이 충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65년(영조 41)에야 다시 충주목으로 복원되었다.

[의의와 평가]

나주괘서사건과 심정연 옥사를 계기로 준소 세력은 중앙 정계에서 완전히 제거되었고, 이로 인해 영조 연간에 지속되어 왔던 충역 시비가 완전히 일소되었다. 그리고 영조의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천의소감』을 편찬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한편 유수원이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심악의 공초(供招)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심정연 옥사와 유수원의 연관성은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심악의 공초대로라면 충주는 억울하게 현으로 강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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