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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843
한자 李純祐
영어음역 Yi Sunu
이칭/별칭 이청(李請),발지(拔之),금성군(錦城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성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충주사록
성별
몰년 1196년연표보기
본관 우계
대표관직 국자대사성

[정의]

고려 후기 충주사록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우계(羽溪). 초명은 이청(李請), 자는 발지(拔之). 중서사인(中書舍人) 이양식(李陽植)의 아들이여, 어머니는 박씨(朴氏)이다.

[활동사항]

이순우의종 때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충주사록(忠州司祿)에 발탁되었다가 1186년(명종 16)에 공역승겸한림원(供驛丞兼翰林院)으로 추천되었다. 이때 왕태후인 공예태후(恭睿太后) 임씨(任氏)가 유종으로 고생하고 있었으므로 이를 위해 기도문을 짓게 하였는데 “종기는 어머니의 젖에 났으나 아픔은 짐의 마음에 있다(瘡生母乳痛在朕心)”라고 글을 짓자 이 글귀를 보고 명종이 감탄하여 특별히 총애하였다.

1188년 팔관회(八關會) 때의 전약(煎藥)으로 쓰려고 송도·서경·남경·동경의 백성들이 젖소를 모아 젖을 짜서 연유(煉乳)를 만들기 때문에 암소와 송아지가 상하게 되고 경작에 필요한 소가 손상됨을 들어 폐지하기를 청하자 왕이 받아들이니 백성들이 감격하였다고 한다.

우정언·지제고에 선임되고 국자좨주[國子祭酒]·한림학사·예부상서를 역임한 뒤 태자빈객(太子賓客)·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에 올랐다. 이후 벼슬이 국자대사성(國子大司成)에 이르러고 금성군(錦城君)에 봉해졌으나 1197년(명종 27) 참지정사(參知政事) 이인성(李仁成)과 상장군(上將軍) 이강제(李康濟) 등 36인과 함께 최충헌(崔忠獻)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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