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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3285
한자 林俊業
영어음역 Im Juneob
이칭/별칭 영신(英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택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충청북도 충주시
성별
생년 1602년(선조 35)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평택
대표관직 희천군수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평택(平澤). 증조할아버지는 증통정대부 사헌부감찰 임유명(林有名)이며, 할아버지는 증가선대부 호조참판 임덕윤(林德胤)이다. 아버지는 증보국숭록대부 영중추부사 임황(林篁)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임경업(林慶業)·임승업(林承業)이 형이다.

[활동사항]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형 임경업·임승업과 함께 선봉장 정충신(鄭忠信) 휘하에 들어가 안현전투에서 공을 세워 진무원종(振武原從)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1642년(인조 20) 희천군수(熙川郡守)가 되었다.

1642년(인조 20) 청나라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명나라의 병부상서 홍승주(洪承疇)가 청나라에 투항하여, 임경업최명길과 상의하여 승려 독보(獨步)를 명나라에 보내 밀통한 사실을 청나라에 알렸다. 또한, 홍승주 휘하의 오난영(烏鸞營)은 금주위 전투에서 임경업이 일부러 풍랑에 밀려가서 명나라와 끝내 교전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밝혔다.

이에 임경업이 청나라로 소환되어 가던 중 황해도 금천군 금교역에서 몸을 감췄다가 명나라로 망명하였다. 청나라에서는 계속 사신을 파견하여 임경업을 잡아오도록 요구하는 한편, 임경업의 처자·동생 등을 잡아두라고 강요했다. 당시 희천군수였던 임준업은 영변에서 체포되었고, 임경업의 형제들은 청나라의 지시에 따라 의주 등지로 옮겨 구금되었으나 청나라 황제의 명으로 사면되었다. 임준업은 형 임경업의 죄에 연좌되어 오래도록 폐고(廢錮)되었다가, 1697년(숙종 23) 관직이 회복되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두전곡(豆田谷)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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