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류차달을 시조로 하고 류용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 후삼국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8세손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으며, 유경(柳璥)의 고향인 유주...
조선시대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된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조선시대 서원의 효시는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조세붕이 고려 말 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경상도 순흥에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조선의 서원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서원이 관인 양...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신석면(薪石面)의 신(薪) 자와 신니곡면(申尼谷面)의 니(尼) 자를 따서 신니면(薪尼面)이라 하였다. 신니면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 백제는 낭자곡성, 고구려는 국원성, 신라는 중원경의 관할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충주목(忠州牧) 관할이었다. 신니면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
강일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충주강씨는 중국 진(晋)의 대부 강일(强釰)을 시조로 한다. 반면에 1924년에 간행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는 강일의 후손으로 송나라 희종 때 전당을 지낸 강준명(强浚明)을 충주강씨의 시조로 하고 있다. 충주강씨가 충주를 본관으로 삼게 된 경위와 충주 거주 여부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
석린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석씨는 석린(石隣)을 시조로 한다. 『충주석씨세보』에 의하면 석린은 1174년(명종 4)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예성군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석린을 시조로 하고 충주(옛 이름은 예성)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한편으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 옛 문헌에서는 고려 충렬왕...
장문한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충주장씨는 장문한(張文翰)을 시조로 한다. 장문한은 조선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거창현감을 지냈다. 충주장씨는 안견(安堅),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화단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장승업(張承業)을 배출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서는 시조 장문한의 간략한...
지경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지씨는 지경(池鏡)을 시조로 한다. 지경은 송나라 사람으로 960년(광종 11) 태학사로 고려에 와서 평장사를 역임했던 귀화인이다. 지경의 6세손 지종해(池宗海)가 고려 정종[1035~1046] 때 충주백에 봉해졌고 이후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충주지씨는 특히 고려시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