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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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갖는 세거 성씨.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국가에서는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시대 성주,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귀족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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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룡마을의 중간이 되므로, 가운데 청룡 또는 중청룡(中靑龍)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하청동(下靑洞)을 병합하여 중청동이라 하였다. 이 지역은 『여지도서』충원현조에 의하면 성태양면 청룡동리(靑龍洞里) 지역으로 충주 관아로부터 북쪽으로 45리 거리에 위치하였으며, 가구수는 122호에 남자가 34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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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강화(江華). 증조할아버지는 최세창(崔世昌), 할아버지는 최복해(崔福海), 아버지는 최연년(崔延年)이다. 처는 유계손(柳季孫)의 딸이고, 형제로는 형 최순(崔淳)이 있다. 최린(崔潾)은 1478년(성종 9) 문과에 병과 1위로 급제하고 관직에 올랐다. 예문관봉교, 주서, 사간원헌납을 거쳐 1503년(연산군 9) 충주목사로 부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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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중현. 자제 중 첫째 아들 최염은 검교정승·판밀직부사를 지냈고, 셋째 아들 최순은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직제학·대사간을 역임했다. 1374년(공민왕 23)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최영(崔瑩)을 비난하다 연안부사로 좌천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우상시를 거쳐 정몽주(鄭夢周)와 유림의 추천으로 보문각직제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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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최씨는 최승(崔陞)을 시조로 한다. 그러나 최승 이후 계보를 알 수 없어 고려 충선왕 때 판도판서·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최공의(崔公義)를 중시조 겸 1세조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주최씨는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여 문하시중을 지낸 최옥(崔沃)을 비롯하여 문하시랑을 지낸 최백청(崔伯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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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사법·행정·군사적 권한을 지닌 종2품 관직. 조선 초기에는 일반 행정과 군정이 구별되어 있었으나, 태종 이후 감사가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순찰사를 겸하였다. 또한 감영 소재지의 부윤(府尹)이나 목사(牧使)의 직책까지도 겸하게 됨으로써 그 권한이 더욱 확대되어 도의 행정, 사법, 군사의 전반을 통괄하고 관할구역 내의 여러 수령을 감독하는 방대한 권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