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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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3년(고종 40) 9월 충청북도 충주시 금당협에서 고려군이 몽고군을 격파한 전투. 금당협 전투는 1253년 몽고군의 제5차 침입 때 금당협 지역에 침입한 몽고군을 충주의 창정(倉正) 최수(崔守)가 매복하였다가 격퇴한 전투로, 충주산성 전투의 서전이라 할 수 있다. 금당협의 위치는 기록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촌상우차랑(村上友次郞)이 1015년에 쓴 『최근지충주(最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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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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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유학산성에서 다인철소민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고려시대 철소(鐵所)는 생활 용구나 무기류의 제작에 필요한 철을 생산하거나 제작하는 특수민들의 집단 거주지이다. 다인철소는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 지역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충주 서쪽 30리”에 있었다 하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당시 이 지역이 ‘충주목 이안면’으로 편성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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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5년(고종 42)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하늘재에서 충주 정예병이 몽고군을 크게 격파한 전투. 대원령은 삼국시대는 계립령·마골재, 고려시대는 대원령, 지금은 하늘재라 불리는 고개이다. 지금의 충주시 남쪽에 있는 고개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지리적인 요충지이다. 이 때문에 대원령 일대는 충주 및 월악산과 연결되어 몽고군과의 중요한 격전지가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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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6년(고종 43) 4월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덕주산성에서 충주민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고려와 몽고가 처음 접촉한 것은 1219년(고종 6) 고려가 강동성(江東城)에 있는 거란족을 평정할 때 몽고의 후원을 얻어 공동 작전을 취했을 때이다. 이 일을 빌미로 이후 몽고는 고려에 대한 은인을 자처하며 사신을 보내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였다. 1225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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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晉陽). 시호는 정평(靖平). 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를 지낸 유혜방(柳惠方)이다. 아들로 유겸(柳謙)이 있다. 1335년(충숙왕 복위 4)에 태어난 유구(柳玽)는 문과에 급제, 감찰어사로 벼슬길에 올랐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에게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할 때 먼저 이천에 이르러 음식을 장만하여 공민왕을 접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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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자선(子先), 호는 취헌(翠軒).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유홍(兪泓)이며,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역임한 유대일(兪大逸)이며,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인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유백증은 1612년(광해군4)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615년에 승문원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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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신분 차별에 불만을 품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 서얼 박응서 등이 주도하여 역모를 꾀했다가 발각되면서 계축옥사로 확대된 사건. 조선은 서얼을 차별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서얼들은 출세하는 데 제한을 받았으므로 서얼 출신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박응서(朴應犀)·서양갑(徐羊甲)·심우영(沈友英)·이준경(李俊耕)·박치인(朴致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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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생(汝生). 아버지는 진사 이상현이다. 1828년(순조 28) 충청도 충주시에서 태어난 이병숙(李秉淑)은 1855년(철종 6) 무과에 급제하여 1857년 선전관이 되었다. 1865(고종 2) 훈련원판관, 첨정, 호조좌랑을 거쳐 1866년 금위영파총을 지냈다. 1866년(고종 3) 9월 프랑스 군함이 침범하여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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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 당부(戇夫). 아버지는 동몽교관 이희선(李喜善)이며 어머니는 정환(丁煥)의 딸 창원정씨(昌原丁氏)이며, 형은 공조판서 이상길(李尙吉)이다. 이상급은 1603년(선조 36)에 진사가 되고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저작·박사 등을 거쳐, 형조좌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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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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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은 9세기에 접어들면서 옛 백제·고구려 지역에서 등장하는 지방 세력의 반발과 반신라적 민심의 대두를 잠재우고 국가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호국적인 불교의 힘을 빌려 세운 비보적 의미를 지닌 원탑이다. 중앙탑이 충주에 건립된 이유는 그 위치가 신라 영토의 중앙에 해당되어 건탑의 목적을 널리 떨치기에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수도 다음가는 소경(小京)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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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상급의 신도비. 이상급(李尙伋)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당부(戇夫)이며,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1606년(선조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정조 때 안찰사가 부임하자 풍기군수였던 이상급은 속관(屬官)이 되기를 거부하고 사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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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대몽항쟁은 1231년(고종 18)부터 1273년(원종 14) 삼별초군의 패망에 이르는 40여 년이란 장구한 기간 동안 전개되었다. 1225년(고종 12)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국교가 단절된 뒤, 몽고는 1231년(고종 18) 조공 거절 및 저고여 피살에 대한 보복으로 고려에 대한 제1차 침입을 필두로 1254년까지 8차에 걸쳐 한반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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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6년(고종 43) 4월 충주주성에서 고려군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고려와 몽고가 처음 접촉한 것은 1219년(고종 6) 고려가 강동성(江東城)에 있는 거란족을 평정할 때 몽고의 후원을 얻어 공동 작전을 취했을 때이다. 이 일을 빌미로 이후 몽고는 고려에 대한 은인을 자처하며 사신을 보내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였다. 1225년(고종 12) 1월 몽고의 사자 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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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년(충렬왕 17) 충주산성에서 고려군이 원의 반란 세력인 합단(哈丹)의 군대를 격퇴한 전투. 1287년(충렬왕 13) 4월 원(元)에서 흥안령(興安嶺) 동쪽을 지배하던 내안(乃顔)이 사심을 품고 동방의 여러 왕들을 충동질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원 세조(世祖)의 친정에 의하여 토벌되었다. 1288년 초에 내안의 잔여세력인 합단이 막북(漠北)에서 다시 반기를 들었는데, 원이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