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가면 도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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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1일부터 약 1개월 동안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국권을 강탈한 뒤 폭압적인 무단 통치를 실시하였다. 한민족은 무단 통치 아래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교육과 종교도 탄압받았다. 한편 회사령으로 민족 자본가의 성장이 막히고, 토지 조사 사업으로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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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에 있는 농·어촌 생활 환경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문화 마을. 금가문화마을 조성 사업의 목적은 군비행장 소음으로 금가면 면소재지인 하담리를 지금의 장소인 도촌리로 옮겨 마을의 집단화를 도모하여 현대적 기반 시설이 완비된 농·어촌 주택 단지를 조성하는 데 있다. 금가문화마을은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 418번지에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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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 축동·금병에 있는 순흥안씨 집성촌. 잠병리(岑屛里)는 본래 충주군 가차산면 지역으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하여 명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잠리, 사천리, 사랑리, 하담리와 상잠리 일부를 병합하여 잠병리가 되었다. 법정리인 잠병리는 3개의 행정동(축동·금병·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순흥안씨 잠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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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시희·이시걸 형제 효자문. 이시희, 이시걸 형제는 연안이씨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4세손으로 부친과 모친의 상(喪)을 당하여 형제가 함께 정성을 다해 시묘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1722년(경종 2)에 정려(旌閭)가 내려져 효자문이 건립되었다. 그 후 1756년(영조 32) 이시희, 이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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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주 홍기원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일제강점기 가뭄이 심하게 들자 도촌리 지주인 홍기원이 소작인들의 소작료 일체를 탕감해 주자, 이를 고맙게 여긴 소작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기리고자 비를 건립하였다. 본래 금가면 태광수지 앞에 있었다. 금가면사무소를 새롭게 이전, 건립하게 되면서 홍기원 영세불망비도 주민들의 동의 하에 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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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에 있는 금가면장이었던 홍양희의 공덕을 기리는 비. 1945년부터 1960년까지 금가면 1, 2, 3대 면장을 역임한 홍양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금가면민 일동이 세웠다. 본래 금가면 도촌리 종산 밑에 세웠던 것으로, 금가면사무소가 이전, 건립되자 면민들의 동의하에 면사무소 건물 앞쪽으로 이전하였다. 이곳에는 홍승원 영세불망비도 같이 세워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