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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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신앙 공동체. 충주의 교회 역시 다른 중소 도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교파가 모두 유입되어 있다. 감리교·장로교·침례교·순복음교회·성공회·그리스도의교회·구세군·성결교회 등이 그러하다. 서울과 영남·호남을 잇는 중요 길목에 있는 충주의 지리적 위치는 사람들이 왕래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교지였다. 충청북도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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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 치하에서 민족정신의 앙양을 위해 1921년 4월 제내리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성동 평전마을에 신성학원(信成學院)을 세우고, 학생들을 모집하여 교육을 시작하였다. 이민호, 서천순 선생님이 교사로 부임하여 학생교육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이 두 분의 선생님은 모두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에 일제에 의하여 구속되면서 학교는 3년 만에 자동 폐교되었다. 신성학원이 폐교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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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승억의 본관은 평해(平海)이고, 아버지는 손석우(孫錫祐)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웃 신청리의 단경옥(段慶玉), 이희갑(李喜甲), 이강렴(李康濂) 등과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독립선언서를 대량으로 등사하였다. 4월 1일 신니면 용원리(龍院里) 장날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장터에서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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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터. 용안역에는 별장 1명, 노(奴) 103명, 비(婢) 81명, 대마 2필, 기마 7필, 복마 7필이 있었다. 용안역은 원래 고려시대 광주도(廣州道)에 속한 역으로 요안역(遙安驛)으로 불렸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연원도 소속이 되었다. 주의 서쪽 15리에 있었으며, 원래 음성에 속해 있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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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안리에 역참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용원(龍院)이라 불렸다. 옛날 한양에서 내려오는 영남대로의 길목으로서 북쪽의 노은면과도 통하는 용원삼거리에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죽산·장호원 등에서 차령산맥을 넘어와 머무는 역원인 용안역(用安驛)이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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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고장과 나라를 사랑하며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어린이, 기초·기본 학습 능력이 충실하며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린이, 폭넓은 학습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는 어린이, 근검절약하며 민주시민의식을 갖고 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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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내리의 대표적 유적으로는 풍덕마을의 서남쪽에 있는 토계원지이다. 토계원은 대소원과 용원으로 통하는 중간지점에 설치되어 모도원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 상에 위치하였다. 지금은 논으로 변한 사갑들 앞의 들 가운데 어디쯤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원이 있는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이 마을이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수년 전 농경지 정리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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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체육 활동에 필요한 시설과 그 부대 시설. 충주시 체육 시설은 크게 공공 체육 시설·학교 체육 시설·사설 체육 시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공공 체육 시설은 충주시 소재 공공 기관이 직접 관리하는 공공 체육 시설·체육 공원·동네 체육 시설·기타 생활 체육 시설로 구분할 수 있고, 학교 체육 시설은 실내 체육 시설과 실외 체육 시설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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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풍덕과 성동이 힘을 모아 공동으로 공회당을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풍덕마을의 이칠영(李七榮)이 제내리 303번지의 밭 200평을 부지로 희사함으로써 풍덕마을에 세우게 되었다. 풍덕에서는 방풍림계에서 건축비의 반액(62원 50전)을 지불하였다. 그 후 1934년에는 동네의 학생들이 멀리 용원과 대소원으로 통학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자 사립학교를 건립 운영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