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475 |
---|---|
한자 | 孫承億 |
영어음역 | Son Seunge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화석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구완회 |
성격 | 독립운동가 |
---|---|
출신지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화석리 |
성별 | 남 |
생년 | 1893년![]() |
몰년 | 1934년![]() |
본관 | 평해 |
대표경력 | 용원 만세운동 주도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승억의 본관은 평해(平海)이고, 아버지는 손석우(孫錫祐)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웃 신청리의 단경옥(段慶玉), 이희갑(李喜甲), 이강렴(李康濂) 등과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독립선언서를 대량으로 등사하였다. 4월 1일 신니면 용원리(龍院里) 장날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이른바 ‘용원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또 청주형무소에서 만기 출옥하게 될 때 옥문에서 재차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여 부르다가 재수감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다시 2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하였다. 이후 일본 헌병과 경찰 등의 감시와 탄압이 계속되자 1934년 4월 16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1968년 대한민국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