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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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일제의 사법기관. 조선총독부는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 각 지역에 식민지 사법기관을 설립하여 한국인을 통치하였는데, 공주지방법원 충주지청도 그 중 하나로 설립되었다. 1894년 형조가 폐지된 후 법무아문(法務衙門)이 설치되고, 다음 해인 1895년 법무부로 개칭되면서 같은 해 7월 「재판소기구법」이 발포되었다. 충주 지역에 근대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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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마수리의 대성(大姓)인 운봉박씨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신석 이장인 이유성 씨가 한문 공부도 많이 했고 보학에도 밝은 분이 박장석 씨라고 말하면서 그를 추천했다. 사실 마수리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운봉박씨의 유래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박장석 씨를 만나 운봉박씨가 고려 말에 시작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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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하마비.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궁가, 문묘 등의 앞에 세워놓은 표석으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게 하였다. 충주 지역에는 충주향교 앞의 하마비와 충주 경종 태실 앞의 하마비가 있다. 충주 경종 태실 앞에 1689년(숙종 15)에 세운 원자아기씨 태실비와 1726년(영조 2)에 세운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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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행정가. 김사묵은 1856년 4월 9일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서 출생하였다. 1885년(고종 25)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일본유람신사 단원으로 활약하였다. 1897년 중추원 참서관을 지냈고, 1902년 평리원 수반검사,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1903년 경무청 경무국장을 지냈고, 1905년 3월 경무청 경찰국장을 지냈다. 1907년 경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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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조선국세조사보고’의 직업별 인구 항목에 보면, 충주군 전체 수산업 인구 25명 중 엄정면에서 수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9명이었다. 물론 엄정면에서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은 목계 밖에 없었으므로 이 9명은 모두 목계 주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어업에 종사하는 마을 사람들이 계속 있었으며 최근까지 목계에서 어업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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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문정공(文貞公) 박승휘(朴承輝)이며, 아버지는 공조참의 박세병(朴世秉)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박용대는 1865년(고종 2) 진사에 합격하고 1869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주서(書)에 제수되었다. 1871년 홍문관부수찬이 된 뒤 평북감시(平北監試), 경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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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1910년 8월 한국병합이 체결됨에 따라 일제의 조선 침략이 완성되었다. 일제는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더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1910년 10월부터 한반도에 대한 구체적인 식민지 지배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지배정책은 시대에 따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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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사세국 충주출장소. 1910년 제정된 조선총독부 관제 중 경제 담당 부서는 탁지부(度支部)였는데, 탁지부 안에는 조세를 담당하는 사세국(司稅局)과 예산을 담당하는 사계국(司計局)이 있었다. 조선총독부 사세국 충주출장소는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북 지역의 조세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2년 4월 1일 대구, 대전, 개성,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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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종의 태실. 경종대왕 태실비에 의하면 경종이 1688년(숙종 18) 10월에 태어나자 이듬해 2월에 태장하였으며, 1762년(영조 2) 9월 가봉(加封)하였다. 영조는 선왕 경종의 태실을 꾸미고, 순호군(巡護軍) 16명을 두어 3년마다 위안제(慰安祭)를 지냈다. 태장(胎藏) 시 태실비에 ‘강희이십칠년십월이십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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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조선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을 기하여 부·군의 구역을 개편하고, 군의 수를 대폭 감축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1910년 당시 12개 부, 317개 군은 크게 감축되어 220개 군으로 줄어들어 들었고 109개 군이 폐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충청북도에서도 청풍·청안·문의·회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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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충주군 읍내면에 있었던 금융조합. 충주 지역 농민들에게 농업자금을 제공하여 농업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9년 12월 5일 충주군 읍내면에 설립되었다. 1927년 이완재(李完載)가 조합장으로, 송하각치(松下角治)가 이사로 선출되었으나 1929년 이사가 도엽매남(稻葉梅楠)으로 교체되었다. 그 후 1933년에는 신정무부(新井武夫),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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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행정 자문기관. 조선총독부에서 지방 행정을 원활히 관할하기 위하여 충주면장의 업무 수행에 대한 자문 기관으로서 충주면협의원회를 설립하였다. 1920년 7월 조선총독부 제령 제13호에 의거해 면제가 제정되었다. 이후 1923년 2월 15일 충주면이 지정면이 됨으로써 충주면협의원회가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동년 5월 21일 충주면사무소에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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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주조 업체. 조선 술의 제조와 판매 및 그에 따르는 업무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38년 3월 12일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읍에 충주주조주식회사가 설립되었으며, 주조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충주세무서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충주주조주식회사는 동년 4월 4일 창립 총회를 개최하였다. 1939년 사장은 궁무보(宮武保)·박용래(朴容來), 이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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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헌병 경찰 기관. 충주 지역에서 식민화에 반대하는 한국인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선 말기 일제의 감독 기관이었던 통감부는 충주 지역에 경비 기관으로 경찰서를 배치하는 것 이외에, 충청북도 천안헌병분대의 일 구역으로 충주헌병분견소를 설치하고 헌병과 보조원을 배치하여 경찰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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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가 식민지적 토지소유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행한 사업.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는 조선의 토지에 대해 소유권·가격·지형지모(地形地貌)를 파악하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이는 근대적 토지제도와 지세제도를 확립하여 식민 통치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토지조사사업 결과, 토지를 소유했던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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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형평사의 지부. 형평사는 1920~1930년대에 걸쳐 백정들의 실질적 해방을 목적으로 활동한 전국적 조직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백정이라는 신분적 차별이 법률적으로 철폐되었으나 이후에도 실생활에서는 차별이 여전했다. 1922년 일본 간사이[關西]지방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수평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3년 4월 25일 진주의 이학찬(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