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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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부곡·향(鄕)·소(所)·처(處)·장(莊) 등의 지방 특별행정구역은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월부곡 역시 고려시대에 이미 단월역으로 개편되고 있으므로, 기원은 그 이전시기로 소급된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삼국시대에 부곡의 선행형태를 찾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부곡은 대체로 신라 말 고려 초에 후삼국 통합전쟁 중에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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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시대부터 시작된 택견은 신라시대에는 화랑도로서 삼국을 통일하는 근간이 되었고, 고려시대에는 호국 무예로서 무과 시제의 정규 과목이 될 정도로 국가 차원에서 장려했던 무예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숭문천무(崇文賤武) 사상으로 인해 쇠퇴하기에 이르렀으며, 한일합방 후에는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으로 택견꾼들은 일제의 눈을 피해 산에서 수련해 왔다. 그동안 아무도 돌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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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읍리(邑吏)를 역임한 인물. 본관은 충주(忠州). 증조할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석광필(石光弼)이며, 아들 석지강(石至剛)은 사마시에 합격했다. 임진왜란 때 석감의 조카 석천수(石天壽)가 피난하여 왔는데, 어느 날 보리를 벤 후 밤에 교동(校洞)에 들어가니 왜적의 방화로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석감은 조카인 석천수와 함께 화염을 무릅쓰고 향교에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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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읍리(邑吏). 본관은 충주(忠州). 도사(都事) 석광필(石光弼)의 고손이다. 작은아버지는 석감(石鑑)이며, 아들은 석응선(石應璿)으로 사마시에 합격했다. 석천수는 예조(禮曹) 및 병조(兵曹)의 수교(受敎)를 수록한 『호성공사실(護聖公事實)』중의「호성사고유문(護聖祠告由文)」에 따르면 임진왜란으로 피난해 있던 어느 날 밤 교동(校洞)에 들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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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충주는 가장 희생이 많았던 싸움터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신립 장군은 탄금대 앞에서 달천과 남한강을 뒤로 하여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는 8,000여 명의 조선군 중 두서너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할 만큼 희생이 큰 전투였다. 또한 충주읍성에 있던 많은 사람들, 즉 사민(士民)과 관속(官屬)들이 당대의 명장인 신립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믿고 피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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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문화동 전주유씨 전능부원군 종친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조선 후기 영조가 신하들에게 어제(御製)를 내리고, 참석자들에게 화답하도록 한 시를 필사한 서첩. 1770년(영조 46) 6월 영조가 친임(親臨) 도목정사(都目政事)를 마치고 나서 동석하였던 신하들에게 어제를 내리고 화답(和答, 갱진)하도록 한 시를 필사한 것을 서첩으로 제작한 것이다. 도목정사는 인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