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전후부터 후삼국시대까지 충청북도 충주시의 역사와 문화.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는 3세기 한반도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마한·변한·진한으로 구분되었으며, 70여 개의 소국(小國)이 있었다. 백제와 신라도 각각 백제국(伯濟國)과 사로국(斯盧國)이란 이름의 소국으로 등장하여 주변 소국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다. 한국 고대사회는...
국원성은 고구려가 평양 천도 후 남진을 계속하여 5세기 전반 충주 지역을 점령하고 설치한 수도 다음 가는 부도(副都)였다. 고구려의 남방 경영 책원지이자 신라 공격의 전초기지였다. 충주 고구려비는 이러한 고구려 남진 정책의 성공을 기념하는 비로,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이기도 하다. 고구려가 충주에 국원성을 설치하여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한 것은 충주...
진흥왕은 재위 12년째를 맞은 551년에 나라를 새롭게 열겠다는 의지로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고친다. 개국의 의지를 실천하여 신라의 중흥을 이룩한 진흥왕의 일대 사업은 국경 지대의 요충인 낭성(娘城) 순수에서 우륵의 신가(하림조)를 접한 이후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진흥왕과 우륵(于勒)의 만남에는 어떠한 수수께끼가 있음이 분명하다. 다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육지에서 주변에 비해 지대가 낮아 물이 고인 공간. 한반도에서 비단 충주 지역만 내륙에 호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주요 대하천을 끼고 있는 지역, 그 중에서도 산간 계곡을 굽이굽이 흘러오다가 급격히 하곡이 넓어지기 시작하는 변환점에서는 대부분 대형 다목적 댐과 넓은 인공 호수가 조성되어 있다. 북한강 유역의 춘천(소양강댐·춘천댐), 낙동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