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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458
한자 未乙省
영어음역 Mieulseong
이칭/별칭 국원성,탁장성,완장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집필자 이창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관련문헌 『삼국사기』|『고려사』|『신증동국여지승람』|『대동지지』

[정의]

삼국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명칭.

[개설]

‘충주’라는 지명은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그 이전에는 ‘국원’과 ‘중원’이 공식 명칭으로서 삼국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충주의 연혁을 다루고 있는 주요 사료들에는 삼국시대 고구려가 이 지역을 장악하고 설치한 국원성을 언급하면서 공통적으로 “혹은 미을성이라고 한다.”는 점을 주석으로 기재하고 있다. 즉 고구려에 의해 국원성으로 불리기 이전 또는 비슷한 시기에 그렇게 불렸던 사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미을성은 마한 이래 충주 지역의 초기 지명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명칭유래]

충주 지역에 있었던 마한의 한 소국이 백제에 복속되었다가 다시 고구려에 복속되면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비로소 국원성이란 이름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의 역사 기록들에서 국원성과 함께 미을성을 비롯한 몇몇 다른 이름들이 전하는 것은 당시의 고유한 발음을 한자를 빌어 표기한 데서 빚어진 현상이다. 국원성의 다른 이름이라고 기록된 미을성 등이 백제에 복속된 후 백제에 의해 붙여진 지명인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대동지지(大東地志)』의 충주 연혁는 “본래 임나국(任那國)인데 후에 백제가 차지하여 낭자곡성(娘子谷城)이라 칭하였다. 한편 낭자성이라고도 하고, 미을성이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신라가 국원소경 설치를 즈음하여 가야계 사람들을 이주시킨 것을 애초에 임나국이 충주 지역에 있었던 것처럼 착각한 점이나, 낭자곡성은 서원(西原), 즉 청주 지역으로 볼 가능성도 있는 점 등에서, 『대동지지』의 이 부분은 따르기 어렵다.

[관련기록]

미을성은 『삼국사기』와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국원성에 관한 기록에 주석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모두 국원성미을성으로도 불렸다는 것이다. 또한 미을성과 더불어 탁장성(『삼국사기』), 완장성(莞長城)(『고려사』), 완장성(薍長城)(『신증동국여지승람』)의 이름들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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