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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탄부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479
한자 異次呑部曲
영어의미역 Communities of Low Caste Laborers, Ichatan
이칭/별칭 이차탄부곡(伊次呑部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이창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시대
시행연도/일시 고려시대
폐지연도/일시 조선 전기

[정의]

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 부곡은 대체로 신라 말기와 고려 전기 후삼국 통합전쟁 중 저항한 호족세력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편성하면서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후삼국 통합 후 고려는 이 지역들을 법제적으로 부곡제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성, 군현제의 하부기구로 예속시키고 군현제를 통해 간접 지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12세기 이후 고려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민(民)의 의식이 성장하여 신분해방을 천명하는 노비들의 저항이 일어나게 되었다. 부곡민이 이에 합세하는 일들이 벌어지자, 무신정권은 부곡민을 일반 군현으로 승격하였다. 또한 외침에 저항한 군공 포상 등의 형태로 신분 상승이 이루어지기도 함으로써 사실상 고려의 신분질서와 체제는 해체의 길을 걸었고, 부곡제도 그러한 과정에서 점차 소멸되어갔다.

[관련기록]

이차탄부곡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충주목(忠州牧) 기사에서만 단편적인 사실이 남아 있다. 고적(古跡)조에 “이차탄부곡(伊次呑部曲)·감물내미부곡(甘勿內彌部曲)은 주(州) 남쪽 45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성씨(姓氏)조에는 채(蔡)·박(朴)·윤(尹)씨를 이차탄부곡의 성씨로 기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차탄부곡의 설치나 폐지 시기 등은 짐작하기 어렵고, 감물내미부곡과 함께 방향과 거리가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 지금의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면 부근으로 짐작된다.

[변천]

이차탄부곡은 최초의 설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충주목에 설치되었던 지방의 특별행정구역이다. 하지만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남아 있지 않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적(古跡)에 흔적이 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다른 부곡들과 마찬가지로 늦어도 조선16세기에 폐지되었거나 일반 군현으로 전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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